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이 협상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뭘까. 상대가 자기 주장만 일삼거나 그들 때문에 화나는 순간이라고 한다.

감정 조절 방법은 대부분 감정을 자극하는 문제를 이성으로부터 분리시키라고 한다. 일단 감정이 작동하면 이성을 잃게 된다. 따라서 감정이 일어나기 전에 이성을 찾아야 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방법 중 하나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제시한 것이다. 화가 날 때면 마음속으로 1부터 10까지 숫자를 거꾸로 세어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하버드대의 협상전문인 윌리엄 유리 교수가 제시한 ‘발코니로 나가기(Go to the balcony)’다. 협상에서 감정이 생기면 그 자리를 벗어나서 감정을 가라앉히라는 것이다. 숫자를 세는 것은 심리적으로 문제에서 떨어지는 방법이며, 발코니로 나가기는 물리적으로 문제와 거리를 만드는 방법이다. 결국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이성과 감정의 거리를 떼어 놓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이성과 감정을 분리시키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현장에서 협상하는 사람들은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왜 현장에서는 이런 좋은 방법을 적용하기가 어려울까. 협상 전문가 짐 캠프는 다른 관점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협상가들은 협상 전에 상대방을 파악하려고 다양한 정보를 탐색한 후에 협상에 임한다. 그 과정에서 협상가들은 감정이 흔들리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 캠프의 주장이다. 간단한 게임을 통해 그 주장을 알아보자.

눈을 감고 사자를 한 번 떠올려 보자. 갈기는 무슨 색인가. 어딘가를 가만히 바라보는가, 아니면 갈기를 세우며 큰 소리로 으르렁대며 다른 짐승을 위협하고 있는가. 가만히 앉아 있는가, 아니면 갈기를 휘날리며 사냥을 하고 있는가.

눈치챘는가. 위에 묘사되고 있는 사자는 계속해서 갈기를 언급하고 있다. 모든 사자들이 갈기를 가지고 있을까. 아니다. 갈기가 있는 사자는 수사자다. 그냥 사자라고 말해 놓고 계속 갈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왜일까. 질문하는 사람이 이미 사자의 대표를 수사자로 가정해 놓고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일을 할 때나 협상을 할 때 문제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 미리 예상하고 그 예상한 결과에 대해 자신만의 가정을 한다. 그 가정이 자신의 가정일 뿐이지 옳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상대방이 그 가정대로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다른 사람이기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자기가 예상한 방식으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당황하게 되고, 자신에 대해 실망하거나 상대방에 대해 화가 나게 된다.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을 다스리려면 상대방에 대한 예상과 가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캠프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에 대한 예상과 가정을 버릴 수 있을까. 어떤 업무를 하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 계획을 세우려면 예상이 필요하고, 이에 대해 가능성을 파악하려면 벌어질 일에 대해 가정을 해야 한다. 즉 일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예상과 가정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예상과 가정은 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 예상과 가정대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예상하고 가정한 대로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다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

이외에도 협상 전문가인 조슈아 와이스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감정 조절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특정한 말이나 행동, 상황에 대해 갑작스럽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와이스가 말하는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은 마치 용의 역린과 비슷하다. 역린을 건드리면 용이 사람을 해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감정의 역린이 있다. 따라서 평소 자신을 쉽게 흥분시키는 감정의 역린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감정의 역린을 알고 있다면 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서 역린이 나타나면 바로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협상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하라. 내가 상대방에 대해 가지는 예상과 가정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명심하라. 그리고 자기 감정의 역린이 무엇인지를 머릿속에 되뇌어라. 만일 협상을 하다가 예상과 가정이 틀린 경우가 발생하거나, 감정의 역린이 건드려지면 지체 없이 발코니로 나가라. 그래야 ‘감정의 용’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계평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