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취주악부 출신이 중심이 된 ‘경기시니어앙상블’이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윈드 오케스트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추가영 기자
경기고 취주악부 출신이 중심이 된 ‘경기시니어앙상블’이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윈드 오케스트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추가영 기자
지난달 12일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구민회관. 경기고 취주악부(밴드부) 출신이 중심이 된 ‘경기시니어앙상블(KSE)’의 연습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격주로 토요일마다 골프도 마다하고, 가끔은 가족의 잔소리도 뒤로 한 채 이곳에 모인다. 음악과 사람이 좋아서다.

음악과 사람이 좋아서…격주 토요일 3시간 '구슬땀'
KSE에서 활동 중인 단원들의 직업은 교수를 비롯해 기업인 법조인 의사 교수 등 다양하다. 입시 위주 교육에 밀려 고교 밴드부가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경기고 취주악부 출신 졸업생이 모여 1988년 만든 순수 아마추어 윈드(관악기 중심) 오케스트라다.

80여명의 단원은 나이도 다양하다. 올해 희수(77세)를 맞은 안한성 안흥상사 회장 등 경기고 54회 졸업생부터 108회까지 두 세대를 아우른다. 호칭은 ‘형’으로 통일했지만 과거 취주악부 기강이 여전히 남아있다. 환갑을 넘긴 후배는 선배의 커피 심부름에 기꺼이 응한다.

지휘는 서울대 음대와 벨기에 왕립음악원 출신의 박영훈 전 국립교향악단원이 맡고 있다. 지휘자의 권력은 막강하다. 쉬는 시간이라도 지휘자 음성이 들리면 잡담을 멈춘다. 10여분간 쉬는 시간이 끝나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울려퍼졌다. 초견(初見) 연주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다.

클라리넷은 경기시니어앙상블 회장인 김도한 서울대 수학과 교수(전 대한수학회장)와 전 회장인 이수문 화이트블럭 대표(전 하츠대표), 최중길 연세대 화학과 교수 등이 맡고 있다. 색소폰은 권영길 전 롯데항공화물 대표와 서헌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중앙대 부총장)가, 플루트는 이필한 전 하이메트 대표,황정규 법무법인 주원 대표 변호사(전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가 연주한다. 트럼펫은 이순우 전 상사중재원장, 유포니움은 김문식 아주대 보건대학원장(전 국립보건원장), 트롬본은 박세곤 경원대 명예교수 몫이다. 드럼, 심벌즈, 캐스터네츠 등은 이순병 동부건설 대표 등이 담당한다.

2주에 한 번 토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가량 정기연습을 마치고 나면 근처 삼겹살집에서 뒤풀이를 한다. 매년 정기연주회를 앞두고는 1박2일간 ‘여름뮤직캠프’를 떠나 하루 종일 집중훈련을 하고 인근 지역축제 특설무대 공연을 하기도 한다.

과거 취주악부로서 추억을 나누는 한편 음악을 사랑하는 동문들에게 모임을 개방해 외연도 넓히고 있다. 현재 KSE 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첫 비(非)취주악부 출신 회장이기도 하다. 2010년부터는 KSE 후원으로 색소폰을 좋아하는 동문(51회~80회 졸업생)들이 모인 경기색소폰 앙상블도 KSE와 함께 정기연주회 무대에 올랐다.

단원들의 못 말리는 예술 사랑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KSE의 맏형인 이순우 전 대한상사중재원장은 초교 4학년이던 1948년 효제초교 브라스 밴드반에 입반해 트럼펫 연주를 시작한 뒤 지금도 매일 집에 설치한 ‘방음부스’에서 연습한다. 이 전 원장은 “얼마전엔 상공부 후배 부탁으로 결혼식 주례를 맡아 주례사 뒤에 축주까지 했다”며 “결혼식 주례가 트럼펫 독주를 한 것은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정도로 드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수문 대표는 경기고 재학 시절 취주악부 외에도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생 때도 연극반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이런 경력은 창작뮤지컬 명성황후 제작 당시 꽃을 피웠다. 이 대표는 현재 경기 파주에서 ‘화이트블럭’이란 갤러리를 경영하고 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