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현대미술품, 월가 큰손·석유 부자 사들여…블루칩 작가들 작품값 '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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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46) 현대미술품 왜 비싼가?
현대미술 시장에서 수천만달러라는 작품값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대가급 작가의 작품은 뉴욕과 런던 경매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종전 작품값을 2~3배 능가하는 가격으로 낙찰되기 일쑤다. 미술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상주의 이전의 대가급 미술가의 작품값은 이와 비교해볼 때 상당히 굴욕적이다.
평범한 컬렉터의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도 시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슈퍼 리치 컬렉터의 대폭적인 증가다. ‘포브스’지의 조사에 따르면 1987년 기준 전 세계 억만장자는 140명이었지만 2014년에는 1645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게다가 이들이 보유한 총자산은 같은 기간 312조원에서 6776조원으로 22배나 늘었다. 부의 집중이 그만큼 심화했다는 얘기다.
이들은 불황에 대비해 경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미술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앤디 워홀이나 데미안 허스트의 초고가 작품을 서슴없이 사들인다. 게다가 이런 작품은 신분의 상징이다.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작품을 보유함으로써 고상한 문화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
현대미술품 가격의 고공 행진은 헤지펀드로 돈을 번 인물들의 대거 유입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블루칩 주식을 사들이는 것처럼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여 가격이 올라가면 서슴없이 팔아치운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월가 출신 인물의 평균 작품 보유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익을 실현할 기미가 보이면 마치 증시에서 단타 매매하듯 미련 없이 경매에 부친다. 스티브 코언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 언론사를 인수하기 위해 미술품 4점을 경매 의뢰했다. 그에게 미술품은 또 다른 형태의 통화비축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대형 미술관이 속속 들어설 예정이어서 미술품 수요도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아랍권의 오일머니는 국제미술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만 해도 내년 아부다비에 루브르박물관과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의 개관을 준비하는 등 4개의 대형 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렇게 세계 미술 시장의 가격 상승은 큰손 컬렉터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미술 시장은 외형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슈퍼 리치 시장의 움직임에 힘입은 것이다. 일반 미술 시장의 성장은 생각보다 완만하다. 미술품 가격지수인 메이모지스지수는 2013년 전년 대비 겨우 1.5% 상승했다.
현대미술품의 보다 근본적인 상승 요인은 미술 시장 자체에서 발생한다. 미술 시장이 지속되기 위해 작품값은 계속 올라야만 한다. 딜러로서는 자신이 관리하는 작가의 작품이 계속 올라야 작품을 지속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작품값의 하락은 작가의 인기가 떨어진다는 것을 뜻하며 또 그럴 경우 자신을 믿고 투자한 컬렉터들에게 불신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오르기만 하는 현대미술품 시장에 대해 갈수록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미술 시장이 붕괴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월가 출신 헤지펀드 매니저의 대거 유입은 미술 시장의 견실한 성장을 바라는 컬렉터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들은 미술 시장이 매력적인 투자수단이라고 판단해 손을 뻗쳤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언제든지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미술 시장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국제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중동, 중남미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적어도 급격한 붕괴는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시장의 붕괴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유로화와 엔화 가치는 되레 상승해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현대미술품 가격의 고공 행진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다. 시장원리 도입과 현대미술 선호현상이 빚어낸 불가피한 진통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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