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 전 한국은행 부총재가 중도 사퇴한 것을 놓고 뒷말이 나온다.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인 한은 부총재가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은 2004년 대통령 임명제로 바뀐 이후 처음이다. 이주열 현 총재가 김중수 전 총재 때 불화를 빚으면서도 부총재 임기를 끝까지 채웠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박 전 부총재가 김 전 총재의 사람으로 꼽혀왔던 것이 사퇴의 결정적 이유였다는 소리도 들린다.

물론 누구로부터도 직접적인 사퇴 압력은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 한은은 조직 안정을 바라는 박 전 부총재 당사자의 용퇴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박 부총재를 향해 ‘김중수 맨’이라며 빨리 그만두라고 채근하는 압박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김 전 총재 시절 임명됐던 다른 일부 부총재보들도 동반사퇴하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총재와 박 전 부총재 사이에 앙금이 쌓여 이 총재 취임 직후부터 중도 사퇴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했던 터다. 이번 사퇴를 두고 정치권에서 종종 등장하는 표현대로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는 식의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은이 그동안 무리한 발탁 인사 등으로 내부 불만과 조직의 동요가 적지 않았던 저간의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이 총재에겐 흐트러진 조직을 다잡아야 한다는 책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임기를 보장받는 부총재가 중도에 퇴진하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치 조직도 아닌 중앙은행에서 보복 인사, 뒤끝 인사 혹은 누구는 누구 사람 따위의 뒷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심각한 기강해이다. 파벌이 혹 존재한다는 증좌인 것인가. 앞으로 있을 인사에서 요직에 기용되는 간부를 ‘이주열 사람’이라고 부르고, 다음 총재는 전임자 그림자를 지운다며 다시 갈아엎는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중앙은행 중립성에도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한은은 정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전문가 그룹이어야 할 한은 집행부가 이렇게 자리를 놓고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