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시장 진단] "해고 자유 보장해야 일자리 늘어"…울림 커지는 게리 베커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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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별세한 경제석학의 6년전 조언 다시 살펴보니
비정규직 비율 높은 건 노동시장 유연성 부족한 탓
한국 노동생산성 美의 절반…OECD 국가 중 28위 그쳐
비정규직 비율 높은 건 노동시장 유연성 부족한 탓
한국 노동생산성 美의 절반…OECD 국가 중 28위 그쳐
“노동시장 경직성이 한국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입니다. 비정규직 비율과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부족해서입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별세한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2008년 한국을 찾았을 때 이 같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베커 교수가 이 문제를 지적한 지 6년이 지났지만 한국 노동시장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상임금 줄소송과 정년 연장 등의 여파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의 관점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정규직 과보호 여전
베커 교수는 생전에 노동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개인의 인적자본 △노동자에게 투자되는 자본의 양 △기술발달 수준 △노동시장의 효율성 등 네 가지를 들었다. 이 가운데 한국은 노동시장의 효율성이 가장 문제라고 베커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우선 “한국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은 노동시장 자체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라며 “기업들이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고용이라는 대안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2.6%로 베커 교수가 한국을 찾았던 2008년(33.8%)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그는 “이처럼 이중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를 축소하고, 비정규직에 대해선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실제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분석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은 28.9달러로 34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미국(61.6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프랑스(59.5달러)와 독일(58.3달러), 영국(47.8달러), 일본(40.1달러)에도 크게 못 미쳤다.
○“해고의 자유가 청년 일자리 만든다”
그는 높은 청년실업률도 노동시장 유연성이 부족한 탓이 크다고 봤다. 올해 3월 기준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9.9%에 달한다. 생산성을 기준으로 고용이 이뤄져야 하는데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있는 대기업과 금융회사에 강성노조가 버티면서 청년층의 일자리 진입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베커 교수는 이에 따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해고의 자유를 보다 많이 보장해줄 것을 주창했다.“경기가 안 좋을 때 정규직이라도 임금 삭감은 물론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고용할 인센티브가 줄어들 것입니다. 해고를 규제하는 정부는 결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베커 교수의 제자인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한국노동경제학회장)는 이에 대해 “지금은 강성노조와 정규직을 과잉보호하는 법 등으로 해고가 자유롭지 못해 청년층이 들어올 문이 좁다”며 “노동시장 유연화는 청년 취업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이 고용 보호 정도를 미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낮춘다면 청년층 고용률은 각각 3.6%포인트, 1.7%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노동시장 개입 안돼”
일각에서는 해고가 쉬워지면 근로자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예단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베커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해고와 고용이 자유롭다는 건 근로자 입장에선 일자리 공급이 늘어나고 임금 수준이 비슷한 다른 일자리로 이동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바람직한 노동정책이란 노동자가 지금의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할 경우 비슷한 수준의 다른 일자리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고용과 해고가 유연하지 못한 정규직 채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베커 교수는 정규직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법이나 제도, 관행 등을 줄여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일관된 사고를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기업경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문제, 정년 60세 의무화 등은 베커 교수가 강조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임금은 노사의 자유계약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며 “임금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정년 연장이 ‘권고’에서 ‘의무’로 바뀌어 기업이 상황에 따라 고용을 유연하게 조절할 여력이 더 떨어졌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지난 3일(현지시간) 별세한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2008년 한국을 찾았을 때 이 같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베커 교수가 이 문제를 지적한 지 6년이 지났지만 한국 노동시장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상임금 줄소송과 정년 연장 등의 여파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의 관점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정규직 과보호 여전
베커 교수는 생전에 노동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개인의 인적자본 △노동자에게 투자되는 자본의 양 △기술발달 수준 △노동시장의 효율성 등 네 가지를 들었다. 이 가운데 한국은 노동시장의 효율성이 가장 문제라고 베커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우선 “한국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은 노동시장 자체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라며 “기업들이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고용이라는 대안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2.6%로 베커 교수가 한국을 찾았던 2008년(33.8%)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그는 “이처럼 이중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를 축소하고, 비정규직에 대해선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실제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분석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은 28.9달러로 34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미국(61.6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프랑스(59.5달러)와 독일(58.3달러), 영국(47.8달러), 일본(40.1달러)에도 크게 못 미쳤다.
○“해고의 자유가 청년 일자리 만든다”
그는 높은 청년실업률도 노동시장 유연성이 부족한 탓이 크다고 봤다. 올해 3월 기준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9.9%에 달한다. 생산성을 기준으로 고용이 이뤄져야 하는데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있는 대기업과 금융회사에 강성노조가 버티면서 청년층의 일자리 진입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베커 교수는 이에 따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해고의 자유를 보다 많이 보장해줄 것을 주창했다.“경기가 안 좋을 때 정규직이라도 임금 삭감은 물론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고용할 인센티브가 줄어들 것입니다. 해고를 규제하는 정부는 결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베커 교수의 제자인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한국노동경제학회장)는 이에 대해 “지금은 강성노조와 정규직을 과잉보호하는 법 등으로 해고가 자유롭지 못해 청년층이 들어올 문이 좁다”며 “노동시장 유연화는 청년 취업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이 고용 보호 정도를 미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낮춘다면 청년층 고용률은 각각 3.6%포인트, 1.7%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노동시장 개입 안돼”
일각에서는 해고가 쉬워지면 근로자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예단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베커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해고와 고용이 자유롭다는 건 근로자 입장에선 일자리 공급이 늘어나고 임금 수준이 비슷한 다른 일자리로 이동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바람직한 노동정책이란 노동자가 지금의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할 경우 비슷한 수준의 다른 일자리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고용과 해고가 유연하지 못한 정규직 채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베커 교수는 정규직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법이나 제도, 관행 등을 줄여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일관된 사고를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기업경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문제, 정년 60세 의무화 등은 베커 교수가 강조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임금은 노사의 자유계약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며 “임금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정년 연장이 ‘권고’에서 ‘의무’로 바뀌어 기업이 상황에 따라 고용을 유연하게 조절할 여력이 더 떨어졌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