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겉핥기식 안전관리
(2) 작동안한 매뉴얼
안내방송 제대로 안해 승객 '무방비' 선로 대피
(3) 안전투자에 소홀
무임수송에 적자 눈덩이…年수입 2.4%만 시설투자
○겉핥기식 지하철 안전관리
5일 서울시에 따르면 2호선 신당역~상왕십리역 사이엔 3개의 신호기가 설치돼 있다. 정상 상태라면 앞 열차가 정차한 경우 신호기 3개가 다가오는 후속 열차에 ‘주의·정지·정지’ 순으로 표시돼야 하지만 사고 발생 당시 ‘진행·진행·정지’ 순으로 표시됐다. 신호기가 ‘정지’나 ‘주의’로 표시되면 열차자동정지장치(ATS)가 작동하지만 ‘진행’으로 표시되면 작동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후속 열차 기관사가 마지막 신호기의 ‘정지’ 표시를 보고서야 급히 수동으로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제동거리 부족으로 앞 열차와 추돌한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을지로입구역 선로전환기 속도 조건을 바꾸기 위해 연동장치의 데이터를 수정하면서 신호기에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서울시가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달 17일부터 30일까지 지하철 대상 특별 안전점검을 했다는 점이다.
서울메트로 측은 “신호기는 일상점검 대상이라 특별점검에서 빠졌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서울메트로는 지난달 29일 이후 나흘 동안 신호기가 고장난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추돌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뒤늦게 알아챘다. 겉핥기식 안전점검 탓에 나흘 동안 하루 평균 550대의 열차가 신호기가 고장난 채 무방비로 운행된 셈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이달부터 오는 7월까지 외부전문가와 합동으로 서울 지하철 1~9호선 모든 노선에 대해 ATS 등 특별점검을 다시 하기로 했다.
○작동 안한 비상 매뉴얼
서울메트로는 지난 2일 오후 3시30분 사고 발생 뒤 7분 후에 대피안내방송과 함께 객실 내 출입문을 개방해 승객 대피를 유도했다고 발표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추돌 뒤 승무원은 바로 관제소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승무원의 실제 신고는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승객이 119에 최초 신고한 시간보다도 4분 늦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에 따르면 스스로 비상문을 열고 선로를 통해 대피한 승객도 적지 않았다. 만약 반대편에서 다른 열차가 진입했다면 대형 인명피해가 날 수 있었다. ‘상황파악 후 안내방송 하겠다’는 방송만 나온 채 정확한 사고 상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제때 이뤄지지 않자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 승객들이 앞다퉈 대피한 것이다.
서울메트로 승무원들은 분기마다 6시간씩 안전교육을 받지만 실제 사고 현장에선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노원 갑)은 “지난해 7월 서울시의 서울메트로 감사 결과를 보면 승무원 교육 때 출석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훈련비를 지급했다”며 “승무원에 대한 훈련이 부실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적자 이유로 안전투자 소홀
3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 탓에 노후 차량 정비 등 안전 투자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129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부채는 3조3318억원으로, 2009년(2조7100억원) 대비 22.9% 증가했다. 개통 후 30년가량 지난 2호선의 경우 전동차량 등 각종 시설물의 내구 연한이 초과돼 재투자 단계에 진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서울메트로의 안전투자 비용은 올해 440억원으로 연간 수입 예산(1조8442억원)의 2.4%에 불과하다. 서울메트로 측은 “원가 대비 80%에 불과한 낮은 운임비용과 무임수송 비용 때문에 노후시설 개선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해명했다. 65세 이상 노인 대상 지하철 무임승차제 비용은 지난해 서울지하철 1~4호선만 1600억원에 달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