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소년', 피 끓는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무대에 펼친 명랑만화
고등학교 2학년 배드민턴 선수 화영은 최신판 ‘마이 마이’로 ‘UP’의 ‘뿌요뿌요’를 듣고 있다. 친한 오빠인 복싱 국가대표 민욱이 ‘UP’를 “업”으로 발음하며 알은체하자 화영이 핀잔을 준다. “업이 아니라 유피야. 유피를 업이라고 하면 아저씨야, 아저씨.”

연극판 ‘응답하라 1997’이다.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유도소년’(사진)은 TV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는 또 다른 1990년대 아날로그 감성으로 관객을 파고든다. 1997년 서울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배경으로 유도·복싱·배드민턴 고교 선수들의 정직한 땀과 눈물, 풋풋한 사랑과 우정, 깨알 같은 웃음이 담긴 ‘피 끓는 청춘들의 성장 드라마’가 그럴싸하게 펼쳐진다.

대본을 쓴 박경찬 작가의 실제 학창시절 ‘유도 소년’ 경험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주인공 이름도 ‘박경찬’이다. 그래서인지 각 장면의 세부 묘사와 설정, 19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의 사실감과 극적 설득력이 상당히 높다.극 초반 공개되는 경찬의 가방 속에는 만화 책 ‘열혈강호’와 만화 잡지 ‘영챔프’, 그리고 야한 잡지가 한 권씩 들어 있다.그 나이 때 남학생들이 즐겨 봤을 법한 책들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소품인 동시에 작가와 연극의 만화적 감수성을 내비치는 도구로도 보였다.

연극은 실화에 만화적 유머와 상상력을 결합해 웃음과 감동이 있는 ‘명랑·스포츠·순정 만화’를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한다. 소극장 무대가 줄 수 있는 연극의 재미를 풍부하게 살려낸다. 조명을 적절히 활용한 공간 연출과 드라마의 강약과 완급 조절도 훌륭하다. 뮤지컬 ‘풍월주’ ‘번지 점프를 하다’ 등을 연출한 이재준의 솜씨다. 관객을 ‘전북체고 유도부원’으로 참여시키는 연극 놀이에도 재치가 넘친다.

유도 경기 및 연습 장면, 경찬과 민욱의 격투 장면 등에 생동감과 긴박감이 넘친다. 사실감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노력했을지가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홍우진(경찬) 차용학(민욱) 정연(화영) 박정민(요셉) 조현식(태구) 양경원(코치) 등 젊은 배우들이 제 옷을 입은 듯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공연은 내달 29일까지, 3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