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만든 사내 아이디어 게시판,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만성대기?
한 경영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상담 요청을 받았다. “돈 들여서 아이디어 게시판을 만들었으나 감감 무소식입니다. 대기만성이겠거니 생각하고 기다려봤지만 이제는 만성대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어요. 어찌 해야 하나요.”

아이디어 제안 제도는 기업들이 비용절감, 신상품 개발 등의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좋은 수단 중 하나다. 그런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아이디어 제안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 활성화되기는 쉽지 않다. 자기 일 하기도 바쁜 직원들로서는 아이디어 제안제도라는 게 그저 또 하나의 일로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가 업무로 보이는 제안활동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 조직 내 지식유통 활성화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힌드 벤뱌 교수와 마샬 알스타인 교수에 따르면 다음 세 가지 방법이 적합하다.

첫째, 재미 요소를 추가해 흥미를 끌어야 한다. 카카오 스토리나 밴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놓았는데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는다면 서운함을 느낄 것이다. 댓글이나 이모티콘이 많이 달리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보상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원리를 제안제도에 적용한 사례가 있다. 글로벌 생활가전 제조업체 GE는 아이디어 거래소(imagination market)라고 하는 아이디어 제안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은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이디어 중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는 것에 가상의 돈을 투자할 수 있다. 투자자가 많고 투자액이 클수록 해당 아이디어의 주가가 올라간다. 주식시장이 4주 단위로 지속되며 마지막 5일간 가장 높은 평균주가를 기록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과 투자자는 인센티브를 받는다. 그러자 직원들이 별도 블로그를 통해 투자정보를 공유하기까지 했다. GE는 이를 통해 많은 혁신 아이디어를 얻었고 이 중 몇몇은 상품화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둘째, 참여에 방해되는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대개 기업에서는 정해진 양식에 맞춰 구체적인 실행방안까지 적으라고 요구한다. 평가자 입장에서는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적용하는 데 편하기 때문인데, 참여하는 직원들 입장에서 이 틀이 부담이다. 참여 방법을 단순화시켜야 한다. LG전자의 에어컨사업부는 작업현장에 ‘낭비 재고 현황판’을 설치하고 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간단하게 포스트잇에 적어 내도록 주문했다. 그러자 하루에도 수십 건의 아이디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디어 제안을 위한 별도의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LG유플러스는 사내 행사인 아이디어 올림피아드를 활성화하려고 ‘아이디어 올림피아드 참가자는 대회기간 동안 업무시간 중 10%를 대회 준비에 쓸 수 있다’는 규칙을 정했다. 그 결과 참가 팀 수가 늘었고 아이디어의 질도 높아졌다.

셋째, 제안 아이디어의 수준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별화해야 한다. 휴렛팩커드(HP)는 사내 아이디어 게시판을 만들었다. 여기에 참여하는 직원을 세 종류로 구분하고 보상을 차등화했다.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 질문을 올리는 사람, 단순한 답변을 다는 사람 등으로 나누어 이들에게 각각 2000포인트, 1000포인트, 500포인트를 주는 식이다. 인도의 정보기술(IT) 솔루션기업 인포시스는 K숍이라는 사내 지식 시장을 구축하고 직원들로 하여금 아이디어들에 대해 가격을 매기게 했다.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활용한 후 프로젝트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고, 성과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판단해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다. 그리고 가격에 따라 아이디어 제안 직원에게 보상을 달리했다. 그러자 제안 아이디어의 질이 훨씬 높아졌다고 한다.

사내 제안제도가 만성대기 상태에 멈추어 있지 않게 하려면 좀 더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다. 참여도가 낮은 이유는 직원들에게는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내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먼저 재미 요소를 통해 직원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다음으로 직원들이 참여하기 쉽도록 장벽을 낮추고 아이디어의 수준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제안제도는 만성대기 상태의 애물단지에서 가장 효과적인 아이디어 공장이 될 것이다.

김용성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