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철밥통 생태계와 싸구려 민주주의가 만든 참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열흘째다. 구조요원들은 이 순간도 사력을 다해 찬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너무도 진척이 더디다. 초기에는 더욱 그랬다. 구조활동은 전혀 체계적이지 않았다. 구조요원들을 둘러싸고 있는 각급 행정조직들은 더욱 그랬다. 지휘팀은 제각각이었고 서로 간에 정보교환조차 원활하지 못했다. 풀어질 대로 풀어진 공직사회의 기강이나 질서 때문일 것이다. 10개에 달했다는 제각각인 대책본부며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과 해군으로 갈라진 우왕좌왕 지휘체계에 수습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단순히 현장의 컨트롤타워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직 사회 전체가 통제불능, 지휘불능, 복무 불이행, 근무태만 사회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의심을 갖게 된다. 해운산업 전체가 해수부의 놀이터였고 업자들과는 동업관계였다. 이런 철밥통 구조 속에서 사전 체크도 없고, 위기 시에 목숨 걸고 일할 동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싸구려 민주주의가 공직에까지 파고 들어 상사의 명령이 안 먹히고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근무기강이 해이해진 것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국장급 고위공직자가 넋 잃은 유족들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지탄을 받을 정도였다. 노련한 민간 수중전문가의 견해가 묵살되면서 가장 중요한 초기 48시간을 그냥 허비했다는 비판도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공직 고유의 긴장감이 사라진 결과다.
공직만의 일도 아닐 것이다. 스스로 만든 재난보도 준칙과는 완전히 거꾸로 간 언론부터 반성할 대목이 너무 많다. 불난 극장 안에서 “불이야!”라고 고함지르는 식의 보도였다. 수습은커녕 혼란을 가중시킨 보도가 난무했다. 선동과 감성 저널리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렇게 무책임, 무철학, 과잉이 만연한 뒤끝이 팽목항의 대혼란이었다. 정당한 지시에 대한 철저한 복무, 주어진 임무에 대한 하자없는 수행, 절제된 보도, 이런 기본이 안 된 사회의 자화상이다.
단순히 현장의 컨트롤타워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직 사회 전체가 통제불능, 지휘불능, 복무 불이행, 근무태만 사회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의심을 갖게 된다. 해운산업 전체가 해수부의 놀이터였고 업자들과는 동업관계였다. 이런 철밥통 구조 속에서 사전 체크도 없고, 위기 시에 목숨 걸고 일할 동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싸구려 민주주의가 공직에까지 파고 들어 상사의 명령이 안 먹히고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근무기강이 해이해진 것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국장급 고위공직자가 넋 잃은 유족들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지탄을 받을 정도였다. 노련한 민간 수중전문가의 견해가 묵살되면서 가장 중요한 초기 48시간을 그냥 허비했다는 비판도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공직 고유의 긴장감이 사라진 결과다.
공직만의 일도 아닐 것이다. 스스로 만든 재난보도 준칙과는 완전히 거꾸로 간 언론부터 반성할 대목이 너무 많다. 불난 극장 안에서 “불이야!”라고 고함지르는 식의 보도였다. 수습은커녕 혼란을 가중시킨 보도가 난무했다. 선동과 감성 저널리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렇게 무책임, 무철학, 과잉이 만연한 뒤끝이 팽목항의 대혼란이었다. 정당한 지시에 대한 철저한 복무, 주어진 임무에 대한 하자없는 수행, 절제된 보도, 이런 기본이 안 된 사회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