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택 가격 폭락의 쓴맛을 봤던 미국이 이번엔 월세 가격이 치솟는 임대시장 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통상 감당할 수 있는 ‘가계소득 대비 30%’ 수준을 넘어 절반가량을 임대료로 내야 하는 도시가 속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부동산전문 웹사이트 ‘질로우’의 자료를 인용, “소득상승세에 비해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미국 주요 대도시 90곳의 임대료(중간값 기준)가 가계소득(중위소득)의 30%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美 '렌트 푸어' 속출…한국과 닮은꼴

○LA, 소득 대비 임대료 47%

가계소득 대비 임대료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는 로스앤젤레스(LA)로, 2000년 1분기 34.1%에서 지난해 3분기 47%로 뛰었다. 월급의 절반을 월세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마이애미는 같은 기간 이 비중이 26.5%에서 43%로 올랐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도 과거 평균치(1985~2000년)인 14%에서 지난해 35%로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캐피털이코노믹스리서치연구소는 올해 미 대도시 임대료 상승률이 지난해 2.8%보다 높은 4%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입자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수학교사 스텔라 샌타마리아(40)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6개월째 적정 수준의 임대아파트를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 신물이 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룸메이트를 찾아 임대료를 절반씩 내고 거주하는 신풍속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 12월 숀 도노번 미 연방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은 치솟는 임대료와 관련해 “미국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최악의 위기상황”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소에 따르면 가계소득의 30% 이상을 주택 임대료로 내는 임차인 비중은 전국적으로 2000년 38%에서 지난해엔 약 50%로 증가했다. 미국의 세입자 두 명 중 한 명이 이른바 ‘렌트 푸어(rent poor)’인 셈이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펴낸 ‘미국인의 임대주택’ 보고서에서 “그동안은 주택소유자가 늘었지만 최근엔 임대시장에 뛰어드는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 주택시장에서 임대 비중이 2004년 31%에서 2012년 35%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택 압류가 속출하면서 수백만 명의 집주인이 쫓겨난 경험 △실업률 증가 △집값 하락에 따른 손실 경험 등이 주택 구입을 막고 임대주택을 찾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주택을 구입하지 않고 전세시장만 과열되고 있는 한국의 부동산시장과 비슷한 모습이다.

○까다로워진 모기지대출도 원인

금융위기 후 모기지대출이 까다로워진 것도 임대 수요 증가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연방주택기금(주택보조금)도 최근 10년 새 반토막이 났다. 스탄 험프리 질로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07~2013년 미국의 집주인은 20만8000명이 늘어난 반면 임차인은 620만명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임차인 수요 증가를 겨냥한 아파트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지만 수급 불균형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개발업체들이 수익성 좋은 호화 임대아파트 개발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다. NYT는 워싱턴의 경우 고급아파트는 공급 과잉으로 임대료가 내리는 반면 중간 수준 아파트의 임대료는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