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제약회사들이 다국적 제약사들을 겨냥해 의약품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하는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를 겨냥해 ‘퍼스트 제네릭(복제약)’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국내사들의 전략과 맞물리면서 특허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특허전략에 눈뜬 국내 제약사

"복제약 시장 선점"…특허 무효심판청구 '봇물'
특허심판원에 따르면 국내 상위 제약사들이 다국적 제약사를 겨냥한 특허무효심판청구가 급증했다. 국내 15위권 내 제약사들의 특허무효심판청구는 2012년 11건에서 지난해 32건으로 늘었다.

최근 4년간 가장 공세적으로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한 제약사는 한미약품과 종근당이다. 각각 11건씩으로 가장 많다. 동아ST(10건) CJ제일제당(5건) 유한양행 SK케미칼(각각 4건)이 뒤를 이었다. 상위 제약사 중에서는 제네릭 비중이 낮은 LG생명과학이 유일하게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의 ‘대형 품목’에 대한 국내 제약사들의 공세가 두드러졌다. 아스트라제너카의 간판 의약품 고지혈증치료제 ‘크레스토’는 지난해 5월 유한양행 동아ST 한미약품 종근당 등 4개사가 동시에 특허무효심판청구를 제기했다.

○내년 3월 특허연계제도 겨냥

최근 의약품 분야에서 특허무효 소송이 늘어나는 것은 내년 3월15일부터 시행되는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와 관련이 있다는 게 제약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도입되는 이 제도는 다국적사 특허를 가장 먼저 무력화시킨 제약회사에 ‘1년간 배타적으로 제네릭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예컨대 A사 제품에 대한 특허무효심판에서 B사가 이기면 향후 1년간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인 A사와 제네릭 제품을 만든 B사만 제품을 팔 수 있다는 얘기다.

정용익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담당과장은 “국내 제약사들은 용도나 제형에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특허연계제도로 특허를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특허무효심판을 집중 제기한 상위 제약사들은 특허전담팀을 구성, 특허연계제도 시행에 대비하고 있다. 개량신약에 강한 한미약품은 변리사 3명을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된 특허전담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1년간 배타적 판매권한을 갖는 퍼스트 제네릭 자격을 획득하면 이점이 크기 때문에 다국적사 특허를 스크린해 무효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사를 견제하기 위해 특허 취득을 하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심판청구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SK케미칼이 폐렴백신 임상 1상 시험을 진행하자 2007년 국내에 특허를 출원한 뒤 4년간 손을 놓고 있던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는 2011년 3월 특허심판원에 심사를 청구, 지난해 5월 국내 특허를 확보했다.

SK케미칼은 이에 맞서기 위해 지난해 10월 ‘백신의 단백질 결합과 관련한 화이자 특허는 이전에 유사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진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특허심판원에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