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선수 잠재력 끌어내는 능력, 내가 그렇게 못나보였던 식스맨 시절에 키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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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2년연속 우승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
바닥에서 울던 '독종'
현역시절엔 벤치멤버 "게임은 뛰지 못해도 상대팀 분석하느라 언제나 가장 바빴죠"
끈기로 일군 'V 매직'
만년 꼴찌였던 '우리銀',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2년연속 우승 이끌어
바닥에서 울던 '독종'
현역시절엔 벤치멤버 "게임은 뛰지 못해도 상대팀 분석하느라 언제나 가장 바빴죠"
끈기로 일군 'V 매직'
만년 꼴찌였던 '우리銀',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2년연속 우승 이끌어
‘드디어 기회가 왔다.’
2001년 12월12일 대구 산격동 대구실내체육관, 동양 오리온스의 식스맨 위성우는 출전 준비를 했다. 상대는 인천 SK 빅스. 2쿼터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김진 동양 감독은 위성우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문)경은이가 바로 슛을 쏠 거야. 절대 공을 못 잡게 해야 해. 페이크 모션(fake motion·속임 동작)에도 속으면 안돼.”
하지만 너무 긴장해서일까. 위성우는 나가자마자 문경은의 슛을 허용하고 말았다. 공을 잡고 오른쪽으로 갈 듯하다가 한 바퀴 돌아 왼쪽으로 공을 돌리는 ‘스핀무브(spin-move)’에 당한 것이다. 그날 동양은 SK에 85 대 88로 석패했다. 숙소로 돌아온 위성우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밤새 스스로를 자책했다.
지난 10일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위성우 춘천 우리은행 한새 감독(43)은 “알고도 놓쳤다는 생각에 정말 괴로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위 감독은 선수 시절 주전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투입되는 식스맨(후보 1순위)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농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다. 6개 여자 프로농구팀 중 최약체로 4년 연속 꼴찌였던 우리은행에 부임하자마자 2012~2013시즌과 2013~2014시즌에 2년 연속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별다른 전력 보강 없이 이룬 성과라 그의 능력은 더욱 돋보였다. ‘위성우 매직’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일정 기준에 이를 때까지 ‘훈련 또 훈련’
위 감독은 2년 연속 우승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모든 것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라는 기준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에도 그랬다. 경기에서 잘 뛰어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미달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자신감이 부족했다.
절대평가는 감독이 돼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제가 생각하는 경기 수준이 확고하다 보니 경기에 이겨도 선수들을 다그친다”며 “그런 성격 때문에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털어놨다.
실제가 그렇다. 위 감독은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기로 악명(?)이 높다. 우리은행 가드 박혜진 선수가 “훈련받을 땐 너무 힘들어서 지나가는 개가 부러웠다”고 고백할 정도다.
대표적인 게 여름마다 하는 2주간의 체력훈련이다. 위 감독은 부임한 뒤 처음 실행한 체력훈련에서 전체 13명의 선수에게 400m 트랙을 뛰도록 했다. 10바퀴를 뛰면서 한 바퀴당 1분20초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12명이 10바퀴를 1분20초 안에 통과했다. 단 한 명이 문제였다. 매번 1분30초에 그쳤다. 60바퀴를 뛰도록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위 감독은 나머지 12명에게 다시 트랙을 뛰게 시켰다.
“농구경기에서 한 명의 실력이 떨어지면 나머지 선수가 공백을 메워야 합니다. 선수들도 자신이 못하면 남들이 더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죠.”
그날 선수들은 체력 소모가 극한에 달하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위 감독은 멈추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도 같은 훈련을 계속했다. 100바퀴쯤 뛰었을 때 드디어 나머지 한 명이 1분20초 안에 결승점에 도착했다. 위 감독이 부임한 뒤 한국을 대표하는 센터가 된 양지희 선수였다.
시도해서 실패하는 것은 아름답다
위 감독도 선수들에게 느슨해질 때가 있다. 경기장에서다. 선수들의 경기방식엔 지나친 간섭을 자제한다. 조건은 있다. “무엇이든 경기를 풀기 위해 시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슛을 쏴서 실패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뛰어가서 공을 잡아야 하는데 포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달라붙어야죠.”
위 감독은 작년 1월 청주 경기에서 보여준 박혜진의 활약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경기 시간 종료 시점이 다 됐지만, 점수는 청주 KB와 동점이었다. 상대의 밀착 수비에 공을 패스하기도 힘들었다. 이때 박혜진이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예정에 없던 레이업슛을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위 감독은 박혜진을 칭찬했다.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이 적극적으로 경기하라’는 뜻이었다. 춘천에서 열린 다음 라운드에서도 동점 상황이 반복됐다. 이때 박혜진이 과감하게 레이업슛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똑같은 상황이 두 경기 연속 생겼는데 혜진이가 주저 없이 레이업슛을 쏘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프로에서 2위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승하기 위해선 그 정도 근성은 있어야죠.”
‘우승 후유증’ 극복이 가장 힘들어
우리은행 체육관에는 ‘빠른 농구 강한 수비’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다름 아닌 위 감독이 지향하는 농구철학이다. 이른바 ‘스피드 농구’다. 강하게 수비한 뒤 상대보다 한 박자 빨리 패스하고 한 박자 빨리 슛을 쏘자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체력이 필수적이다. 지옥훈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위 감독의 스피드 농구는 2년 연속 통합우승으로 화려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시련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첫해 우승 후 선수들이 ‘후유증’을 앓기 시작했다. 최약체팀에서 단번에 우승팀이 됐지만, 진정 자신들의 실력 덕분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다시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감마저 생겨 훈련에도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팀 내 분위기는 처져만 갔다. 연습경기를 해도 예전만 못했다.
“훈련이 너무 고됐던데다 다음해에도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운동을 그만두는 선수도 나왔고요.”
위 감독은 갈등했다. 훈련방식이 잘못됐는지도 되돌아봤다. 스스로도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닌가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 ‘훈련’이었다. “슬럼프는 결국 훈련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고민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몸으로 부딪치고, 몸으로 기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 능력 정확히 파악 … 적재재소 투입
농구계에선 위 감독의 혹독한 훈련뿐만 아니라 선수의 능력을 가늠하는 안목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간파해 적재적소에 투입한다는 후문이다. 위 감독은 “이런 능력은 스스로가 그렇게 못나 보였던 ‘식스맨’ 시절에 키워졌다”고 털어놨다. “주전선수 다섯 명 중 두 자리는 늘 외국인 선수 차지였습니다. 나머지 세 자리를 두고 국내 선수끼리 경쟁해야 하는데 거기에 끼지 못했습니다. 결국 식스맨으로 뛰었죠. 만년후보였던 셈이죠. 하하하.”
식스맨은 언제든지 경기에 투입될 수 있다. 벤치에 앉아 있어도 경기흐름을 놓쳐선 안된다. 자연스럽게 눈치가 빨라졌다. 경기 흐름과 감독의 의중을 읽는 능력도 생겼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게임은 뛰지 못하면서도 매번 경기 전에 상대팀 선수를 분석하느라 늘 바빴다”고 한다.
위 감독 앞에 놓인 과제는 우리은행을 진정 강한 팀으로 만드는 것이다. 방법은 이미 정했다. ‘체력과 수비, 두 가지 기본에 충실한다’는 진부하면서도 본질적인 전략이다.
한 시간여 진행되던 인터뷰 끝에 의례적으로 미래 계획을 물었다.“미래는 생각 안합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을 거예요.”
■ 위성우 감독
▶1971년 부산 출생
▶1994년 단국대 졸업
▶1998~2001년 안양 SBS 스타즈 선수
▶2001~2003년 동양 대구 오리온스 선수
▶2003~2004년 울산 모비스 선수
▶2005~2012년 안산 신한은행 코치
▶2008년 올림픽 여자농구팀 코치
▶2012년 4월~현재 우리은행 감독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농구팀 감독
글= 박신영/사진=허문찬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