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낯으로 소통 나선 구로다 총재
“(생중계 때문에) 내가 걱정한 건 넥타이 색상 정도였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8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간담회가 생중계로 바뀌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구로다 총재가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섰다. 일본에서 총재 간담회를 실시간 중계할 수 있게 된 건 1882년 일본은행 창립 이후 132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은 한 시간가량 이어지는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총재 발언을 보도할 수 없었다. 한국은행이 10년째 생중계를 허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우리의 메시지가 직접 신속하게 전해지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3시30분. 시장의 눈과 귀는 구로다 총재에게 모아졌다. 소비세 증세 이후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을 기대한 시장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시장의 기대와 정반대로 나왔다. 구로다 총재는 “현재 추가적인 완화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은 도쿄사무소 관계자는 “경기회복으로 내년 2% 물가상승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로다 총재의 자신감이 중계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평가했다.

시장은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달러당 엔화 값은 102엔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다음날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9일 닛케이225지수는 2% 이상 급락했다. 이를 지켜본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 일본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열리는 날이면 증시가 끝나도 펀드매니저들이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재의 표정과 말투까지 주목하면서 그의 ‘본심’을 읽으려는 시장과의 눈치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구로다 총재는 시장 반응을 본 후 고개를 갸웃했을 수 있다. 경기회복에 대한 그의 ‘지나친’ 자신감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 경제정책)의 한 축인 엔저는 꺾였고 주가는 떨어졌다. 첫 출연에서 구로다 총재는 뜻하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시장과의 소통에 한발 더 나아가려는 그의 노력에 성과는 더 지켜볼 일이다.

서정환 도쿄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