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바젤월드…더 럭셔리하게…클래식의 귀환
전 세계 40개국에서 1460개 시계회사들이 모여 꼭꼭 숨겨둔 신상품을 쏟아내는 현장. 매년 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 얘기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열린 올 바젤월드에서는 유명 브랜드들이 준비한 야심작들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12만2000명(주최 측 추산)의 관람객이 몰렸다.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우리 기술력”

브랜드마다 웅장한 부스를 차려놓고 자신들의 위상을 뽐내는 ‘자존심 싸움’이 볼 만했다. 하지만 업체들의 진짜 경쟁은 기술력 부문에서 치열하게 펼쳐졌다.

2014 바젤월드…더 럭셔리하게…클래식의 귀환
오메가는 자체 개발한 최신 기술인 ‘마스터 코-액시얼 무브먼트’를 신상품에 대거 적용해 ‘명품시계의 아이콘’다운 제조 노하우를 과시했다. 무브먼트(동력장치)는 일명 ‘시계의 심장’이라 불리는 핵심 부품인데, 오메가의 이 무브먼트는 초강력 자기장에 노출돼도 시계가 고장나지 않고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브레게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자동식) 투르비용 시계’를 준비했다. 투르비용이란 중력으로 인한 시간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인데, 일단 장착되면 시계값이 억대로 뛰는 최고급 기술이다.

기술이나 디자인의 화려함을 넘어 ‘착한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는 이색 상품도 눈길을 모았다. 쇼파드의 남성 시계 ‘L.U.C 투르비용 QF 페어마인드’는 케이스와 베젤(테두리) 등 주요 부품에 ‘공정채굴’ 인증을 받은 금만을 사용했다. 쇼파드는 이 제품 외에도 다양한 시계와 보석류에 공정채굴 인증을 받은 귀금속을 사용하고 있다. 윤리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럭셔리 브랜드’를 지향한다는 전략에서다.

“시계 디자인, 클래식이 돌아왔다”

올해 바젤월드에서 눈에 띈 트렌드는 ‘클래식의 귀환’이다. 최근 해외 시계 박람회에서는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 관광객을 겨냥해 용을 그려넣거나,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왕창 넣은 화려한 시계들이 적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바젤에선 차분하고 우아한 디자인의 신상품이 강세를 띠는 분위기다.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풍 시계나 기존 인기 모델을 재해석한 상품이 대거 등장했다.

2014 바젤월드…더 럭셔리하게…클래식의 귀환
롤렉스는 1955년의 GMT-마스터 디자인을 계승하면서 세계 최초로 세라크롬(롤렉스가 개발한 세라믹 소재) 테두리에 빨강과 파랑을 반반씩 집어넣어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은 신상품을 내놨다. 태그호이어는 간판 컬렉션인 ‘까레라’에서 클래식한 디자인을 강조한 신상품을 대거 쏟아냈다.

이런 움직임은 장기화하는 경기 불황에 대비해 판매를 효율적으로 높이려는 업체들의 포석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스테판 린더 태그호이어 최고경영자(CEO)는 “너무 튀고 극단적인 디자인 대신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디자인으로 판매를 늘리려는 회사가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계는 스위스? 우리도 있다!”

2014 바젤월드…더 럭셔리하게…클래식의 귀환
자타 공인 ‘시계 강국’ 스위스의 아성에 맞서는 다른 나라 브랜드들의 도전도 눈에 띈다. 일본 시계의 간판 브랜드인 시티즌과 세이코는 위성 신호를 수신해 전 세계 어디서든 정확한 시간을 맞추는 편리한 시계를 선보였다. 빛에너지에서 동력을 얻어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가 없게 하거나, 아예 배터리를 탑재하지 않은 상품까지 내놓는 일본의 기술력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세이코의 경우 강력한 기능에 깔끔한 디자인을 갖춘 고급 모델인 ‘그랜드 세이코’의 새 모델을 선보였는데, 지금까지 일본 판매에 주력하던 데서 벗어나 한국 등 해외 시장 공략을 올해부터 본격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의 로만손, 우림FMG의 아르키메데스, 스타브릿지의 삼족오 등 토종 브랜드들도 바젤월드에 부스를 차리고 ‘메이드 인 코리아’ 시계의 위상을 뽐냈다. 1980년대 시계 제조 강국이었던 한국의 위상을 재건하기 위한 국내 시계인들의 구슬땀을 엿볼 수 있었다. 스와치그룹 계열 ‘해밀턴’과 ‘미도’는 세계 각국의 시간을 표시하는 GMT 시계에서 도쿄를 지우고 서울을 표기한 한정판을 처음 내놨다. 해마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한국 시장에 대한 뜨거운 구애 작전이다.

바젤=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