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라비카 원두 향
지난달 에티오피아 정부의 차관 일행이 방문했다. 우리의 전자조달 행정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역만리에서 온 손님들에게 유익한 방문이 되도록 전자입찰 집행과정을 실연하는 등 반나절 일정을 알차게 준비했다. 이심전심이었던지 40대 여성 차관도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더니 떠난 뒤에도 감사를 표해 왔다.

오래전 해외 출장길에 방문기관의 소홀한 응대에 씁쓸했던 기억이 있어 외국 방문객에게 성의를 다하는 편인데, 에티오피아 분들한테 더 신경을 썼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6·25전쟁에 참전해 6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나라이고, 에티오피아의 놀라운 보은 스토리를 알기 때문이다.

1985년 멕시코에 지진이 났을 때 에티오피아가 5000달러의 구호자금을 보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수년간의 가뭄과 내전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수천명이 질병과 기아로 죽어가던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지진피해가 났어도 멕시코가 에티오피아를 도왔으면 도왔지 어떻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50년 전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을 때 멕시코가 원조를 보낸 데 대해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보답을 한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 온 손님을 어떻게 잘 해드리지 않을 수 있겠나.

신세를 지거나 호의를 받으면 갚아야 한다. 갚지 않으면 빚이 돼 늘 불편하다. 또 염치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답하려 한다.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고서라도, 오랜 세월이 흐르고 곤경 속에 있어도 신세 진 걸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그 때문에 에티오피아가 멕시코에 구호자금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상호성의 원칙’이라는 불문율이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신세를 갚는 것은 아주 인간답고 아름다운 일이다. 문제는 의도가 있는 호의의 덫에 걸려 자칫 규범과 윤리에 어긋나는 보답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런 ‘잘못된 보은’의 경우를 얼마나 자주 보는가. 그래서 남이 베푸는 호의를 함부로 받을 게 아니다.

에티오피아가 아라비카 원두 원산지라며 방문단이 건넨 커피를 아끼며 마시고 있는데 정말 맛과 향이 좋다. 이 커피가 진정한 감사의 표시로 느껴져 더욱 그런 것 아닐까.

민형종 < 조달청장 hjmin@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