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세액 공제와 관련해 행정 소송을 냈다가 최근 쓴맛을 본 A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이 은행은 “R&D 전담부서가 없는 업체에 연구 용역이 재(再)위탁됐다는 이유로 세액 공제를 해주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남대문세무서를 상대로 50억원 상당의 법인세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지난달 패소했다. 전담부서가 없는 업체로 용역이 다시 맡겨진 경우 비용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세금을 내는 건 적법하다는 취지였다.
물론 2012년(사업연도 기준) 이후는 문제될 게 없다. 지난해 세액공제 대상을 ‘전담부서가 있는 업체에 위탁된 경우’로 시행령에 명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던 그 이전의 다툼이다. A은행은 1999~2005년 R&D 용역비에 대해 공제를 받았다. 그러나 2012년 서울지방국세청이 재위탁된 점과 전담부서가 없는 업체에 맡겨졌다는 점을 문제삼아 191억원대의 세금을 다시 물렸다. 이에 은행은 “용역업체가 기술 부족 등으로 일부 용역을 재위탁하는 것은 관례였고 전담부서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며 소송을 냈던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이전의 법원 판결과는 정반대다. 지난해 5월 같은 법원 제11부는 대신증권이 동일한 이유로 낸 30억원 규모의 법인세 부과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며 “전담부서 보유 여부에 따라 세액 공제를 달리 한다면 위탁자에게 재수탁업체의 전담부서 보유를 일일이 확인해 법령에도 없는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6월 하나은행 등 8개사도 같은 취지로 소송에서 이겼다.
행정법원 측은 “앞선 판결은 기업의 R&D 활성화를 위한 세액 공제 취지를 존중한 것이고, 이번에는 세액 공제가 혜택인 만큼 엄격하게 법리를 해석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해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을 내린다면 기업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황제 노역’ 판결 등으로 법원의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고무줄 판결’은 법원에 대한 신뢰를 더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정소람 지식사회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