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세금 2兆 쓰고 말 바꾸는 산업부
“이명박 정부 땐 그냥 행정구역으로 묶어서 했어요. 지역의 실제 산업기반이나 수요 등은 고려하지 않고 위에서 찍어내린 거였어요. 근데 이번엔 달라요.”

지난달 31일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지역산업육성책을 내놓은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설명이다. 시·도의 산업생태계를 반영해 실효성을 갖춘 방안을 내놓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구상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지역마다 산업기반이 다른데 행정구역에 따라 ‘대경권’ ‘동남권’ ‘호남권’ ‘충청권’ 등으로 획일적으로 묶어버리는 바람에 이게 도대체 국책사업육성책인지, 지역산업육성책인지 모르겠다는 기업인들의 원성이 많았어요.”

가만 듣다 보니 지난 정부가 광역경제권 사업을 추진할 때 이 간부가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당시 자료를 찾아봤다. 지식경제부(산업부 전신)가 2011년 5월 기자실에 배포한 ‘5+2광역경제권’ 사업에 대한 1단계 사업결과 평가자료였다. “지역 일자리 5628명 창출, 매출 3조원, 수출 10억8000만달러를 달성해 지역의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했다”는 호평 일색이었다. 현재 산업부 측이 설명하는 문제점들은 어느 곳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정권마다 지역산업육성책이 달라질 수는 있다. 관료들이 정권의 이념과 철학을 반영해 정책 로드맵을 짜고 실행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기와 여건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국민의 신뢰를 먹고산다는 정부로선 특히 그렇다.

산업부는 자신의 설명대로 문제가 많은 이 사업에 1단계(2009~2011년)에만 9845억원을 썼다. 지난해까지 예산을 더해보면 총 2조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정책 전환에 대한 홍보가 다급하기로서니 2조원 이상이 투입된 사업을 깎아내리는 태도가 온당한 것일까.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없이 자기 발등을 찍어대는 산업부를 보면서 세금을 낸 국민만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재후 경제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