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아비브 오헬-셈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컴퓨터과학(CS) 수업 시간에 해킹 방어 프로그램을 짜며 토론하고 있다. 강현우 기자
이스라엘 텔아비브 오헬-셈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컴퓨터과학(CS) 수업 시간에 해킹 방어 프로그램을 짜며 토론하고 있다. 강현우 기자
[스트롱 코리아 - 창의 인재 키우자] 창업강국 이스라엘의 성공비결
“지금 보시는 아이들이 이스라엘을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만드는 겁니다.”(도론 조하르 교사·컴퓨터공학 박사)

지난 25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로카흐가(街) 오헬-셈 고등학교. 100㎡ 넓이의 컴퓨터 실습실에 고3 학생 20여명이 4~5명씩 조를 짜서 PC 앞에서 토론하고 있다. 수업 주제는 ‘대규모 접속 사이트의 해킹과 방어’. 학생들은 인터넷 포털이나 온라인 예매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시스템에 해커가 침입하는 상황을 설정한 다음 침입 경로와 공격 단계별로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조하르 교사 등 두 명의 교사는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짧은 조언을 할 뿐이다.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시스템을 구축해 갔다. 수업 장면을 지켜본 정영식 전주교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국내 대학 컴퓨터공학과 2~3학년 전공 수준”이라며 “다양한 상황을 놓고 실습한다는 점에서 책에서 배운 걸 그대로 해보는 것에 그치는 상당수 국내 대학 전공과정보다 낫다”고 말했다.

“SW 인재 매년 1만명 배출”

[스트롱 코리아 - 창의 인재 키우자] 창업강국 이스라엘의 성공비결
이스라엘은 1992년 국가교육위원회 주도로 소프트웨어(SW) 중심의 컴퓨터과학(CS)을 정규 과목으로 만드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정보통신기술(ICT)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자는 시도였다. 사방이 이슬람 적국(敵國)인 상황에서 ICT로 군대를 첨단화하는 것은 이 나라의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

1994년 고교 과정부터 총 5단계(1단계에 90시간) CS 교육이 시작됐다. 1~2단계는 컴퓨터의 기초, 프로그램과 논리 등으로 구성된다. 3단계는 간단한 프로그램 제작 등 실습이며 4~5단계는 데이터 처리, 사이버 보안 등 고급 과정이다. 물리 화학 등 다른 과학 선택과목도 5단계까지 수강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 한 학년 10만여명 가운데 절반인 5만명가량이 CS를 3단계까지 배운다. 상위 15%는 5단계까지 듣는다. 고교 졸업생 중에서만 SW를 자유롭게 다루는 인재를 매년 1만명 이상 배출한다는 얘기다.

기자가 가본 오헬-셈 고교는 과학 특성화 학교도 아닌 평범한 공립학교였다. 하지만 한 학년 150명 가운데 50여명이 5단계 CS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징병국가인 이스라엘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고교 졸업 뒤 곧바로 군대에 간다. 남자는 3년, 여자는 1년10개월 복무한다. 이리스 바거리 이스라엘 교육부 과학교육R&D단장은 “고교에서 CS를 5단계까지 배운 학생들은 대부분 8200 같은 ICT 특수부대로 가서 배웠던 걸 실습한다”며 “군 복무 뒤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창업이나 취업할 수 있는 밑바탕이 CS 교육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2010년부터 중학교 단계에서도 CS 교육을 시작했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밍보다는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해 로봇을 이동시키는 수업 등 학생들이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해주는 교육이다. 전국 200여개 중학교 가운데 올해 50여개가 CS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했다.

구글 R&D센터도 이스라엘에

군대에서까지 SW 기술을 갈고닦은 청년들은 대학에 진학해 의학이나 경제학 등 다른 전공을 택해 융합형 인재가 되거나 한층 심화된 CS 교육을 받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3 세계 대학 톱 30’ 순위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4개 대학(히브리대 테크니온공대 등)이 포함됐다.

숙련된 SW 인재가 매년 수천명씩 배출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전 세계 국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SW 엔지니어 기근 현상’을 피해가고 있다. 양방향 온라인 광고 솔루션업체 이노비드의 잭 지그돈 창업자는 “이노비드를 포함한 많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지만 연구개발(R&D)센터만큼은 이스라엘에 두고 있다”며 “이스라엘에선 좋은 SW 엔지니어가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280여개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에 R&D센터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나라가 배출하는 뛰어난 SW 인재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 나라의 2012년 R&D 지출 106억달러 가운데 75%인 80억달러가 해외 기업의 투자였다.

인텔과 IBM, 시스코, 애플 등이 미국 외 지역 최대 R&D센터를 이스라엘에서 운영한다. 구글도 지난해 이스라엘의 교통정보 벤처기업 웨이즈를 인수하면서 R&D센터는 계속 이스라엘에 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SW 교육 시스템은 국가 경쟁력으로도 이어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3 세계 경쟁력 순위’에서 이스라엘은 정보기술(IT), 혁신 역량, 과학 연구, 국내총생산 대비 R&D 지출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 창업국가 start-up nation

세계에서 벤처 창업이 가장 활발한 이스라엘을 일컫는 말이자 그 비결을 전 세계에 소개한 책(사울 싱어·댄 세노르 저)의 제목이다. 이 책은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이 미국 벨연구소 특임연구원 시절이던 2010년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텔아비브=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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