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배우러 온 와세다大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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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 방한…징용 피해자들과 면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이 차별받지 않았나요?” “일본에서 조선인은 ‘거짓말하는 사람’ 혹은 ‘도둑’쯤으로 인식돼 변변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죠.”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 14명의 대학생과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곽귀훈 할아버지(90), 시베리아 강제 징용자 이후녕 할아버지(89)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대학생들은 일본 사학 명문 중 하나인 와세다대 재학생이다. ‘아픔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듣고자 노나카 아키히로 와세다대 저널리즘스쿨 교수(61)의 지도로 26일 5박6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것.
대담에 참여한 이후녕 할아버지는 광복을 보름 앞두고 만주에서 징집돼 종전 후 옛 소련의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가 4년4개월을 보내야 했다. “이 기간 체불된 임금만 5200루블, 당시 가치로 1만1000달러에 달했습니다. 시베리아는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죠. 영하 20도를 밑도는 겨울에는 하룻밤에도 여러 명이 죽어나갔어요.”
노나카 교수는 “일본인 대다수는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 ‘무지’가 양국 사이의 여러 문제를 만들었다”며 “한국인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직접 보고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 14명의 대학생과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곽귀훈 할아버지(90), 시베리아 강제 징용자 이후녕 할아버지(89)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대학생들은 일본 사학 명문 중 하나인 와세다대 재학생이다. ‘아픔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듣고자 노나카 아키히로 와세다대 저널리즘스쿨 교수(61)의 지도로 26일 5박6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것.
대담에 참여한 이후녕 할아버지는 광복을 보름 앞두고 만주에서 징집돼 종전 후 옛 소련의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가 4년4개월을 보내야 했다. “이 기간 체불된 임금만 5200루블, 당시 가치로 1만1000달러에 달했습니다. 시베리아는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죠. 영하 20도를 밑도는 겨울에는 하룻밤에도 여러 명이 죽어나갔어요.”
노나카 교수는 “일본인 대다수는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그 ‘무지’가 양국 사이의 여러 문제를 만들었다”며 “한국인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직접 보고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