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자들이 돈 쓰는 환경 만들어야
지난 10여년간 소비부진은 줄곧 우리 경제의 성장활력을 눌러왔다. 소비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연평균 1%포인트 못 미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 미래 불안으로 인한 고령자 가구의 소비지출 축소 등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보다 덜 주목받지만 소득계층별 소비행동 차이와 관련된 점도 있다. 먼저, 소득분배 문제다. 소득분배 악화는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고,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해 전체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소득 5분위 계수 등 소득분배지표로 볼 때 2000년대 들어 소득분배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소비를 억누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 소득수준이 늘어나면서 소비대상과의 미스매치가 생기는 것을 들 수 있다. 소득이 높아지면 누구든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소비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국민소득 5000달러, 1만달러 시대에 나온 상품과 서비스로는 2만달러 시대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소득 증가에 따라 소비의 양이 늘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가계소득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해서 지하철을 두 배 타거나 짜장면을 두 배 먹게 되지는 않는다. 더 높은 품질의 소비 욕구가 국내에서 충족되지 않으면 해외여행과 소비로 대신하려 하게 된다. 계층별 소비추세에서 이런 양상이 뒷받침된다. 통계청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소비성향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가운데에서도 소득이 높은 층의 소비성향이 더 낮아지는 모습이 발견된다.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데다, 눈높이에 맞는 소비대상을 못 찾는 고소득층의 소비가 둔화된다면 전체 소비가 부진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는 고가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사치성 상품이나 소비행위에 높은 특별소비세를 매겼다. 사회적 위화감을 막는다는 논리였다. 시장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성숙되면서 이런 이유에 근거한 과세는 많이 퇴색했다는 평가지만 지금도 개별소비세로 이름만 바뀐 채 과세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에까지 과세가 되고 있다. 대체 세수 확보만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개별소비세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비자의 눈높이를 억지로 낮출 수도 없고 낮추는 것이 적절하지도 않다면, 고품질의 상품 및 서비스 공급을 유도해 고소득층의 소비를 유도함으로써 높아진 소득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소비대상 간의 간극을 줄이는 일이 필요하다. 상품의 고급화는 이미 어느 정도 이뤄져 있어 추가적인 고급화 여지가 그리 크지 않다. 결국 고급화의 요체는 서비스다. 주택이나 노인케어 등 실버산업, 문화와 예술을 접목한 여행 및 레저 서비스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마침 규제완화를 통한 서비스 산업 활성화가 국가적 화두가 되고 있고, 관광산업 활성화 정책도 구체화되고 있다. 규제완화와 더불어 적절한 지원체제를 갖추는 등 공급측면의 정책변화가 중요하다. 발전단계가 훨씬 낮은 중국에서도 일부 레스토랑 등에서 한국보다 다양하고 고급화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소비양극화가 소득격차 확대에 따른 소비의 양적·질적 격차 확대라면 경계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어진 소득분배 상황에서 자기의 소득수준과 취향에 맞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의미에서의 소비양극화는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다. 정서적으로는 일순간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두고 보면 경기를 부양하고 고용을 늘려 소득격차를 줄이는 등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