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운현궁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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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뭐? 대원군이 네 명이라고?” “그럼. 흥선대원군만 있었던 게 아냐.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 인조 아버지 정원대원군, 철종 아버지 전계대원군도 있었어. 흥선대원군이 유명한 건 왕이 즉위할 때 살아 있었고 섭정으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지.” 점심시간에 운현궁을 찾은 직장인들이었다. 무료개방 첫날인데도 비 때문인지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간혹 외국인 관광객이 보였다.
대원군이란 후사 없이 죽은 왕을 대신해 종친 중에서 뽑은 후계자의 친아버지 아닌가. 12세에 즉위한 고종을 대신해 정치판을 쥐락펴락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권세는 막강했다. 종로 낙원상가 옆에 있는 운현궁은 바로 그 역사의 무대다. 고종이 태어나 즉위하기 전까지 자란 곳이기도 하다. 대원군의 위세만큼이나 궁궐처럼 크고 웅장했던 저택인데 지금은 노안당(老安堂), 노락당(老樂堂), 이로당(二老堂)과 부속 행랑채만 남아 있다.
대원군은 이곳에서 전용문을 통해 궁궐로 드나들며 섭정을 펼쳤다. 한때 세도가들의 음모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파락호를 자처하며 상갓집 개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그였다. 그러니 세도정치로 피폐한 국가를 재건해야 했다. 그는 시정잡배 행세를 하며 깨달은 문제들을 과감한 개혁으로 해결했다. 비변사 폐지, 양반 세금 징수, 의복제도 개선, 지방관리 부패 척결 등이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사의 격변기였다. 서양문물 때문에 유교사회 질서가 흔들릴까 두려워 천주교를 박해하고 쇄국정책을 펴는 바람에 그는 신문물을 받아들일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결과 ‘강력한 개혁 정치가’와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라는 엇갈린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19세기 조선의 정치사를 관통했던 그의 일생은 시대의 모순 그 자체였다.
김동인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은 매우 상징적이다. 대원군이 피눈물로 견디며 훗날을 준비했던 역사의 현장, 오랫동안 쓸쓸했던 이곳에 봄이 찾아왔다는 것으로 그의 시대를 그렸다.
그러나 운현궁의 봄은 아직 덜 익었다. 이로당 화단의 매화나무가 봉오리를 맺기 시작했고 목련이 기지개를 켜며 앙증맞은 손을 내밀 뿐이다.
어제 처음 무료로 개방했으니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아질 것이다. 4~6월 꽃필 녘 일요마당 잔치가 열리고, 5월에 전통 왕실의상 패션쇼, 7~8월에는 여름밤 금요 야간개장 공연도 이어질 모양이다. 대원군의 삶을 다룬 연극 ‘운현궁에 노을지다’도 내달 대학로에서 공연된다니 그러면 운현궁의 봄도 좀 화려해지려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대원군이란 후사 없이 죽은 왕을 대신해 종친 중에서 뽑은 후계자의 친아버지 아닌가. 12세에 즉위한 고종을 대신해 정치판을 쥐락펴락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권세는 막강했다. 종로 낙원상가 옆에 있는 운현궁은 바로 그 역사의 무대다. 고종이 태어나 즉위하기 전까지 자란 곳이기도 하다. 대원군의 위세만큼이나 궁궐처럼 크고 웅장했던 저택인데 지금은 노안당(老安堂), 노락당(老樂堂), 이로당(二老堂)과 부속 행랑채만 남아 있다.
대원군은 이곳에서 전용문을 통해 궁궐로 드나들며 섭정을 펼쳤다. 한때 세도가들의 음모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파락호를 자처하며 상갓집 개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그였다. 그러니 세도정치로 피폐한 국가를 재건해야 했다. 그는 시정잡배 행세를 하며 깨달은 문제들을 과감한 개혁으로 해결했다. 비변사 폐지, 양반 세금 징수, 의복제도 개선, 지방관리 부패 척결 등이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사의 격변기였다. 서양문물 때문에 유교사회 질서가 흔들릴까 두려워 천주교를 박해하고 쇄국정책을 펴는 바람에 그는 신문물을 받아들일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결과 ‘강력한 개혁 정치가’와 ‘보수적인 국수주의자’라는 엇갈린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19세기 조선의 정치사를 관통했던 그의 일생은 시대의 모순 그 자체였다.
김동인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은 매우 상징적이다. 대원군이 피눈물로 견디며 훗날을 준비했던 역사의 현장, 오랫동안 쓸쓸했던 이곳에 봄이 찾아왔다는 것으로 그의 시대를 그렸다.
그러나 운현궁의 봄은 아직 덜 익었다. 이로당 화단의 매화나무가 봉오리를 맺기 시작했고 목련이 기지개를 켜며 앙증맞은 손을 내밀 뿐이다.
어제 처음 무료로 개방했으니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아질 것이다. 4~6월 꽃필 녘 일요마당 잔치가 열리고, 5월에 전통 왕실의상 패션쇼, 7~8월에는 여름밤 금요 야간개장 공연도 이어질 모양이다. 대원군의 삶을 다룬 연극 ‘운현궁에 노을지다’도 내달 대학로에서 공연된다니 그러면 운현궁의 봄도 좀 화려해지려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