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신길동 A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입구엔 접근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미끄럼틀은 오랫동안 쓰지 않아 낡았고, 그네에선 삐걱거리는 쇳소리까지 났다. 이곳은 지난해 구청이 실시한 설치검사(안전검사)에서 불합격한 뒤 잠정 폐쇄됐다. 관리사무소 측은 “놀이터를 보수할 돈이 없어 한동안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전국의 모든 놀이터는 내년 1월까지 설치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놀이터는 폐쇄된다. 검사에서 불합격한 놀이터는 개보수를 한 후 재검사를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놀이터에서 부서진 놀이기구 등에 따른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설치검사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한 것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전국 놀이터 중 설치검사를 받은 곳은 6만2519곳 중 4만4537곳으로, 71.2%에 달한다. 문제는 놀이터 숫자가 가장 많은 아파트 단지다. 전국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의 평균 설치검사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안행부 측은 “설치검사에서 불합격할 경우 아파트 주민들이 장기수선충당금 등을 활용해 스스로 정비해야 하기 때문에 설치검사를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놀이터 한 곳 보수에는 최소 3000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비용이 든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정글짐 한 개 설치비용만 3000만~4000만원에 달한다. 2008년 관련법 제정 이전에 만들어진 놀이터의 경우 실질적인 안전 여부와 상관없이 법으로 정해진 규격품을 사용하지 않아 설치검사 시 불합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안행부의 설명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기초자치단체들은 아파트 놀이터 시설지원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럼에도 안행부는 지자체가 해야 할 ‘지방사무’라며 예산 지원 한 푼 없이 지자체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관리법은 필요하다. 다만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무작정 놀이터를 폐쇄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정부가 예산 지원을 늘려 시설 개선에 앞장서거나, 검사 기한을 좀 더 유예해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