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규제혁파, 걸림돌은 국회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이 극에 달했나 보다.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국회를 가자고 하니 기사가 “그런 데는 왜 가느냐”고 노골적으로 싫은 얼굴을 해 당황한 적이 있다. 실제로 연초 모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8.5%에 불과함을 보여줬다.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2011년)가 69%에 달하는 데 비해 국회는 31.0%로 절반도 안 된다. 이마저도 조사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숫자에 의구심을 보낼 정도로 국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땅에 떨어진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을 대신해 아픈 자리를 보듬어줄 곳은 국회다.

현 경제상황에서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중국 경제 위기설에 맞서 내수시장을 키우고 수출 둔화에 대비하기 위한 규제개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다. 최근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경제혁신과 규제혁파를 강도 높게 외치고 있다. 수년째 저성장 늪에서 허우적대는 경제를 끌어올리려면 확실한 규제혁파를 통해 경제가 퀀텀 점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20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위원회가 열리는 것도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낡은 규제체계를 이참에 과감히 뜯어고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모든 규제는 공익에 근거한 착한 얼굴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 뒤에는 규제로 먹고사는 이익집단이 있다. 규제개혁이 정부만이 넘어야 할 큰 산이 아닌 이유다. 문제를 푸는 핵심은 정부가 아닌 국회에 있다. 금년도 예산안을 2013년 마지막 날 밤을 넘겨 1월1일 통과시키면서 무려 113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113개 법안 중 65개 법안은 가결 당일이나 전날에 제안된 법안들이다. 물론 이 법안들이 비슷한 법을 발의한 것을 종합한 안이거나 소관 상임위가 발의한 안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합의한 결과물이다. 이 법안이 국민생활과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란 얘기다. 졸속으로 발의되고 충분한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은 과잉입법은 과도한 규제문제를 잉태하게 될 것이다.

국회도 나름대로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17대 국회에서도 규제개혁특별위원회를 두고 국회에 제출되는 신규 법안에 포함되는 각종 규제를 심의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하는 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 국회에서도 새누리당이 규제개혁특위를 설치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민주당은 나쁜 규제만이 문제라며 규제개혁을 빌미로 대기업의 민원성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행정부는 속성으로 일을 처리한다며 행정부가 마련한 법안을 겉장만 바꿔 의원입법안으로 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행정부는 10단계나 되는 행정부의 법안 처리단계를 뛰어넘어 좋고, 의원은 실적이 올라가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러고 보니 19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률안과 가결된 법률안 수가 정부안에 비해 의원입법안이 각각 15.5배, 4.5배나 된다. 의원입법안이 정부제출법안에 비해 규제 신설 및 강화 성향은 강한 반면 규제완화 및 폐지 성향은 낮다는 연구 결과를 감안할 때 이런 추세로 가면 아무리 행정부에서 규제개혁에 성공한다고 한들 새로운 규제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결국 국회가 행정부의 규제개혁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규제를 권력으로 여기며 부처이기주의에 빠진 행정부도 문제이지만, 과잉입법으로 경제활동과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국회부터 반성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재정부담을 평가하는 비용추계제도와의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국민의 실질적인 부담을 야기하는 규제영향평가제도를 국회 차원에서 도입해야 한다. 날로 늘어나는 의원입법안 건수를 생각할 때 정부입법절차에 상응하는 규제심사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주려 국회의원이 됐다는 의원들의 진심이 국민에게 통하려면 말이다.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