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그 어떤 ‘햄릿’보다 친절하고 재미있고 새로웠다. 4명의 젊은 여성 소리꾼 배우들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의 주인공 햄릿을 낱낱이 분해하고 재해석하면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으로 보여주고 들려줬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판소리의 풍부한 이야기성과 연극성으로 ‘햄릿’을 무대화한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목한 국악 뮤지컬을 창작하는 공연예술 단체 ‘타루’의 신작이다.

무대에는 똑같은 복장과 분장을 한 4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얼핏 봐서는 분간하기 힘들다. 모두 햄릿이다. 이들은 햄릿의 각각 다른 특징을 가진 자아들로,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며 ‘햄릿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때로는 오필리어, 클로디어스, 거투루드 등 다양한 등장인물로 변하며 극을 이끈다.

무엇보다 햄릿의 고민과 갈등 등 심리 상태와 내면 세계를 입체적이면서도 다층적으로 형상화하며 깊이 있게 파고든다. 4명의 ‘수다’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햄릿이 왜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되고 저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의 정황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햄릿’의 시대적·지리적 배경과 국제 정세까지 나름대로 해석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희곡에선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알려주며 원작에서 부족했던 개연성을 높인다.

우리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한 이야기를 곁들이며 이른바 ‘동시대성’을 부여하는 대목에선 젊은 예술인들의 재치와 기발함이 번득인다. 이와 함께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가락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드라마에 녹여내는 시도에서 문화유산인 고전을 통해 시대와 소통하려는 열정이 느껴진다. 전통적인 판소리 형식으로만 들려주는 검술 시합 장면은 어느 장면보다 생생하고 극적이며 긴박감이 넘친다.

다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인 햄릿의 실존적 고민이 담긴 질문에 “산다 죽는다 그게 뭐가 다르냐”고 답하는 결말은 ‘과잉 친절’이다. 고뇌에 찬 우리 시대의 젊은 햄릿이 왜 갑자기 ‘득도한 고승’처럼 말할까. 젊고 팔팔하던 극이 마지막에 확 늙어버린 느낌이다. 공연은 내달 13일까지, 2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