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돈의동 쪽방촌에 종로경찰서의 도보 순찰 구역 ‘반딧불 로드’ 표지가 붙어 있다. 홍선표 기자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 종로경찰서의 도보 순찰 구역 ‘반딧불 로드’ 표지가 붙어 있다. 홍선표 기자
지난 8일 새벽 2시, 서울 돈의동 쪽방촌. 성인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너비의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빨간 벽돌로 지은 허름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철문 위로 삐져나온 연통들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음산함을 더하는 이곳에 600~700명의 주민이 모여 산다.

20년째 쪽방촌에서 지내고 있는 유일원 씨(56)는 “우범지대인 이곳엔 강자와 약자라는 우리만의 법칙이 있다”며 “경찰은 신고했을 때만 오지 순찰은 돌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발로 거리를 누비며 민생 치안을 살피는 경찰의 도보 순찰이 인력 부족으로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파출소 14곳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모두 “지금 인원으로는 정기적인 도보 순찰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2011년 4월 13개 관할 파출소별로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을 ‘반딧불 로드’로 지정해 도보 순찰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달 뒤에는 방송인 송해 씨를 종로2가 파출소 명예소장으로 임명해 돈의동 쪽방촌에 있는 ‘반딧불 로드’를 홍보했다. 3년이 흐른 지금은 이름만 남았다. 종로2가파출소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이곳에 온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그런 게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며 “차량 순찰을 돌기에도 바빠 쪽방촌 골목은 들어가보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관수파출소 소속 경찰관도 “도보 순찰은 주민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고충을 들을 수 있는 통로였다”며 “최근에는 도보 순찰을 거의 못 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경찰의 발목을 붙잡는 가장 큰 요인은 인력 부족이다. 근무 때마다 8명이 일하는 종로2가파출소에는 순찰차 3대가 있다. 차량 한 대당 두 명이 탑승하고 남은 두 명은 파출소에 대기한다. 도보 순찰에 나설 인원은 아예 없다. 13명씩 근무하는 월곡지구대는 10명이 차량 순찰을 돌고 2명이 지구대에 대기하면 1명이 남지만 규정상 혼자 순찰을 돌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범죄 예방 기능의 약화를 걱정했다. 신상영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복 경찰관이 자주 보이기만 해도 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며 “쪽방촌처럼 주민들의 이사가 잦아 자율 방범대를 운영하기 힘들고 범죄율이 높은 곳은 도보 순찰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집회가 많은 종로경찰서 특성상 최소 인원만 파출소 근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 빈발 지역, 여성 안심 귀갓길을 중심으로 도보 순찰 코스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