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G코드의 탈출',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절망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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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들이 모여 만든 극단 경의 창단 공연 ‘G코드의 탈출’도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나는 무대다. 이 작품은 한예종 교수를 지낸 고 윤영선 극작가(1954~2007년)가 1998년 발표한 희곡으로 극단 작은신화에 의해 초연(연출 박상현)됐다. 사랑했던 두 남녀가 허름한 여관방에서 1년만에 다시 만나는 설정의 2인극이다. 극한 절망에 빠진 남자는 여자에게서 삶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극복할 수 없는 차이만 확인한 채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다.
공연은 극사실적으로 작품을 무대화했다.공연장 환경을 그대로 살린 무대세트와 객석 구조부터 절묘하다.‘ㄱ’자 형태의 세트가 여관방 벽면을 이루고,‘ㄴ’자 형태의 객석이 무대를 바라본다. 배우는 일반 공연처럼 한쪽 방향의 객석을 열어 놓고 그 쪽을 향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ㄴ’로 열려있는 객석도 벽면으로 막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마치 ‘ㅁ’자 여관방 안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움직인다.관객들은 한 쪽에서만 들여다 보이는 벽을 통해 여관방 남녀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공간과 동선 연출만으로 관객들을 숨죽이면서 적극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적이면서도 밀도있게 캐릭터를 그려내고 표현하는 남자 박정민과 여자 김보나의 연기도 사실감과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박정민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다소 철학적이고 관념적이고 은유가 섞인 긴 분량의 대사를 어색하지 않으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하는 능력을 보여준다.두 배우는 쉽지 않은 남자와 여자의 캐릭터를 관객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면서 작가가 얘기하려고 하는 주제의식에 다가가게 한다. 남자의 대사에 나오는 ‘G코드’의 의미는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다만 템포가 조금 빠른 느낌이다. 특히 후반부에 남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좀 숨이 차다. 약간 속도를 줄이고 호흡을 길게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남자가 표현하는 절망과 절박함이 조금만 더 깊이있게 전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젊은 연극인들로 꾸려진 극단 경은 소개 글에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주어진 텍스트의 질감에 맞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충분히 수긍할만하고 향후 행보에 기대를 걸게 하는 무대였다. 공연은 오는 23일까지,2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