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젊은 지도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26세에 에스파냐 총독이 됐다. 기원전 3세기의 카르타고는 최강국이었다. “카르타고 허락 없이는 서지중해 바닷물에 손을 담글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1차 포에니전쟁 후 로마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한니발의 야망은 더 컸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마침내 코끼리 부대와 대군을 이끌고 혹한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를 대부분 점령했다. 29세 때였다.

이보다 약 100년 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22세 때 아시아 원정을 시작했다. 스무 살에 왕좌를 물려받은 그는 풍부한 병참 지원 속에서 10여년간의 정복전쟁을 펼치다 33세에 세상을 떴다. 그에 비해 장군의 아들로 아홉 살 때부터 전쟁터를 누빈 한니발은 본국의 지원 없이 용병부대만 데리고 로마의 무릎을 꿇렸으니 차원이 달랐다. 물론 그도 나중엔 33세의 스키피오에게 패하고 말았지만.

젊은 지도자들의 활약은 고대 역사서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처칠 전 영국 총리는 26세에 하원의원, 32세에 통상장관이 됐으며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31세에 보훈 담당 장관이 됐다. 로랑 파비우스는 38세에 프랑스 총리가 됐다. 두바이 국가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는 불과 22세에 국방장관을 맡았다. ‘창조적 파괴’의 경제학자 슘페터가 36세에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이 된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기록이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6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고 김상현 전 의원은 28세에 금배지를 달았다. 조선왕조 최연소 기록으로는 19세에 이조참의(차관보)가 된 민영익을 꼽을 수 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이준은 28세에 영의정까지 올라 명성을 떨쳤다. 최연소 공조판서(26세)와 병조판서(27세)를 지낸 남이, 29세에 호조판서가 된 조영하, 31세에 대제학까지 오른 이덕형도 젊은 리더의 전형이었다.

엊그제 이탈리아에서는 39세의 최연소 총리가 탄생했다. 1922년 39세로 취임한 무솔리니보다 생일이 두 달 빠른 렌치가 주인공이다. 그는 고향 피렌체 시장만 지냈을 뿐 중앙정치 경험도 없다. 부패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에게는 바로 그 점이 더없이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가 40%에 달하는 청년실업률과 국가 전체의 패배주의를 선결과제로 꼽자 이탈리아 장기국채의 지표금리가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30대 총리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큰 모양이다. 하긴 젊은 리더십의 진가는 어려운 시절에 가장 빛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