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혜 씨
정은혜 씨
다소곳한 말투에 수줍음이 많은 모습을 상상했는데, 눈앞의 두 여인은 당차다 못해 도발적이었다. 최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국립창극단의 배우 정은혜(30), 이소연(30)은 젊은 나이만큼이나 재기발랄했다.

지난해 각각 ‘메디아’ ‘단테의 신곡’, ‘서편제’ ‘배비장전’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이들은 창극 ‘숙영낭자전’에서 악역 매월(더블 캐스팅)을 맡았다.

오는 19~23일 달오름극장 재개관작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전생에 못다 이룬 사랑을 이승에서 나누는 숙영낭자와 선군, 선군에게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숙영을 모함하는 노비 매월이 쓰는 사랑과 욕망에 관한 애정학개론이다. 고전소설 원작이며 창극으로 만들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씨는 자신이 맡은 악역을 비틀어보고 싶었다. “전통극의 도식에서 보면 매월은 숙영을 자결하게 만든 악역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매월에겐 사랑을 쟁취하고자 했던 간절함이 있었어요. 모든 아픔은 결핍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이씨는 한 장면 안에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매월은 숙영이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다가가서 당장 짐을 싸서 나가라고 흔드는데, 숙영이 ‘탁’ 하고 쓰러지죠. 그 장면 안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 선군과의 어긋난 사랑 등이 대사 열 줄 안에 빼곡히 들어가 있어요. 호흡을 바꿔가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참 어렵지만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이소연 씨
이소연 씨
두 사람은 작품의 여주인공으로서 사랑받는 역할을 주로 했다. 하루아침에 노비가 되니 평상시 자세부터 달라졌다. “창극단 선생님들이 부르면 저희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모으고 달려간다니까요.(웃음)”

이들은 지난해 초 국립창극단이 10년 만에 뽑은 신입단원 5명에 이름을 올렸다. 공부 욕심이 많았던 정씨는 서울대 국악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는 “지난 1년간 쉼 없이 달려왔지만 극장에 항상 불이 켜있고, 주말이면 관객들이 객석을 채우는 모습을 보니 정말 행복하다”며 “앞으로 관객들에게 가짜 웃음, 가짜 울음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이씨는 청순한 외모 덕에 주로 참하고 사랑스러운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심청이뿐 아니라 뺑덕어멈도 연기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창극 배우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함께 창극 무대에 서고 싶은 연예인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동시에 탤런트 ‘김수현’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김수현만큼 한복과 상투, 갓이 어울리는 배우는 없는 것 같아요. 가수 못지 않은 노래 실력도 한몫하고요. 상상만 해도 행복하네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