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NS "대출심사 소홀" vs 은행 "인감증명서만 10장 받아"
협력업체가 17개 금융회사에서 3000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는 데 도움을 준 혐의로 긴급체포된 KT ENS 직원 김모씨(51)가 9일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은 김씨 구속을 계기로 KT ENS와 금융회사에 다른 공모자가 없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KT ENS와 금융회사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공방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회사끼리 분쟁도 나타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법적분쟁이 잇따를 전망이다.

◆KT ENS·금융사, 공방 본격화

KT ENS와 금융회사들 간 공방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KT ENS는 계속해서 김씨 개인이 저지른 비리며, 시중은행들이 대출심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KT ENS는 은행의 대출 근거가 된 협력업체와 KT ENS 간 세금계산서가 전자발행된 것이 아닌 수기(手記)로 작성됐다는 점을 들어 은행의 부실 심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자세금계산서가 의무화됐다고 하더라도 수기 세금계산서도 얼마든지 통용되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세당국은 2010년 1월1일부터 법인사업자의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전자세금계산서 발급 의무화 후 1년간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2010년 한 해 동안은 수기 세금계산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연간 공급가액(매출)의 2%를 가산세로 물면 수기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있다.

KT ENS 측은 서류 위조에 사용된 회사 인감도 위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KT ENS 관계자는 “인감의 사용 승인이 나더라도 인감 관리 직원이 직접 신청한 직원을 찾아가 서류를 일일이 확인한 뒤 도장을 찍어주고, 이후 이를 기록으로 모두 남긴다”며 “하지만 이번 사기대출과 관련해 이 같은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측은 “KT ENS로부터 받은 인감 증명서만 10장”이라며 “현재도 인터넷 등기소에 해당 발급번호만 입력하면 당시 받았던 인감 증명서가 그대로 나온다”고 반박했다. 관련 서류가 완벽한 만큼 인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KT ENS 측의 책임이 크다는 설명이다.

◆금융회사 간에도 분쟁

사건에 관련된 금융회사들끼리의 책임 떠넘기기도 치열하다. 하나은행은 지급보증을 선 신한금융투자 및 한국투자증권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나은행 법무 관련 담당자는 “은행에서 매출채권이 위조됐음을 알지 못했던 만큼 증권사의 보증의무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반면 증권사들은 “대출 담보가 된 매출채권이 가짜라면 보증의무도 없다”고 반박했다.

하나은행과 별도로 신디케이트론 형식으로 대주단을 구성한 농협은행과 국민은행도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수익권증서를 발행한 농협은행이 매출채권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농협은행은 “대출 원금 상환을 보장한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편 서울지방경찰청은 KT ENS 직원 김씨 구속을 계기로 다른 공모자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사기대출 규모가 3000억원에 육박하는 만큼 김씨와 협력업체 외에 KT ENS와 금융회사 내에 다른 공모자가 존재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신영/김일규 /홍선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