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관념의 감옥에서 탈출…'상자' 밖에서 초심으로 생각하라
창의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가끔 인용하는 영어 관용구로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Think out of the box)’라는 말이 있다. 상자로 상징되는 기존 관념의 한계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생각의 힘은 놀랍다. 일단 생각의 감옥에 갇히면 객관적 상황이 어떻든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환상 통증을 제거하는 거울 치료법의 예를 들어보자. 환상 통증이란 사고 등으로 사지의 일부를 절단한 환자들이 팔다리의 통증을 여전히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이미 사라진 팔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인지라 치료도 쉽지 않다. 원인은 분명하다. 생각 속에서 여전히 그 팔다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끼는 뇌에 직접적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훨씬 간단한 치료법이 있다. 바로 거울 속 팔다리를 움직여 통증을 없애는 거울 치료법이다. 왼손을 잃어버린 환자 앞에 거울을 설치해 환자가 자신의 오른손을 보게 만든다. 교묘하게 설치한 거울의 위치 때문에 환자는 자신의 오른손을 보지 못하지만 거울을 보면서 마치 왼손이 다시 돌아온 듯한 착각을 한다. 치료하는 동안 환자는 오른손을 움직이면서 마치 왼손이 회복되고 자유로워진 것처럼 느끼려고 노력한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환자는 거울 치료를 통해 실질적으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생각은 우리를 구속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풀어주기도 한다. 생각의 힘은 정말 크다.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라 분명한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자녀 또는 직원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리더가 조직원에게 아무런 압박감도 주지 않고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에게서 창의성이 나온다. 그래서 리더는 구성원들이 상자의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 상자를 넘는 과정이야말로 창의성의 산파이기 때문이다.

거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1609년 베니스에 살던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의 안경 제조 전문가가 멀리 있는 사물을 확대해 보여주는 스파이 안경을 발명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군사적 가치가 큰 발명품이기에 제조 원리와 방법은 공개되지 않았다. 발명품의 과학적 가치를 감지한 갈릴레이는 자신도 스파이 안경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는 안경을 만들 줄 몰랐다. 지식의 한계라는 상자에 갇힌 갈릴레이는 하루종일 그 상자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고민했다. 결국 그는 다음날 오목거울을 이용해 사물을 3배까지 확대하는 망원경을 만들었다. 이후 수차례의 수정을 거쳐 그는 사물을 10배까지 확대해서 보는 망원경을 만들었다.

상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은 종종 상자를 뛰어넘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 경험이 창의성을 개발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자의 벽을 발견하면 우리는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때로는 과거의 성공 방식이 상자의 벽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겸손하게 초심으로 돌아가 성공 방식을 폐기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밖에. 지난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싱가포르에서 자기 혁신의 방법을 배워보자.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싱가포르는 자신의 성공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의 시장 개방 이후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사가 경쟁적으로 홍콩으로 이동하자 싱가포르는 전통적인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지위를 잃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과감하게 기존 성공 전략을 수정하면서 상자의 벽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싱가포르의 리더들은 불과 수년 만에 규제를 풀어 카지노를 세우고, 포뮬러1 자동차 대회를 전격적으로 도입하는 등 스스로 세웠던 벽 밖으로 나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실질 구매력을 반영한 싱가포르의 국민총소득(GNI)이 2004년 3만8930달러에서 2012년 6만110달러로 50% 이상 성장했다.

우리를 가두는 상자는 가면을 쓰고 온 축복이다. 겸손하게 초심으로 돌아가 상자의 벽을 뛰어넘을 궁리를 시작하자.

김용성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