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까지…개인정보 빼내 58억 챙겼다
고용노동부 전산망에 있는 기업·개인 정보 12만건을 빼내 정부지원금 지급 대상 영세기업에 접근, 지원금을 받게 해주고 수수료로 58억원을 챙긴 ‘간 큰’ 고용부 5급 공무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유출된 정보로 인한 2차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정부 부처의 허술한 개인 정보 관리실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범죄 밑천된 기업·개인 정보 12만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고용부 전산망에서 기업·개인 정보 12만건을 빼돌려 정부지원금 신청 업무를 대행하며 수수료를 챙긴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공인노무사법 위반)로 고용부 서울관악지청 5급 공무원 최모씨(58)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5일 발표했다. 경찰은 범행을 도운 최씨의 딸(29)과 친구인 목사 박모씨(57) 등 18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청의 기획총괄 업무를 담당해 기업·개인 정보 전산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이 같은 점을 이용해 2008년 8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고용부 전산망 시스템에 접속, 800만건의 기업·개인 정보를 임의로 조회하고 이 중 12만건을 불법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출한 정보에는 사업장 정보, 고용된 근로자 이름 및 주민등록번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는 몰래 빼낸 정보로 정부지원금 알선 사업에 나섰다. 고용부 전산망에 저장된 기업 정보를 조회하면 정부지원금을 탈 수 있는 기업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를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악용했다. 최씨는 영세기업들을 상대로 영업을 벌여 지원금을 받게 해주고 금액의 30%를 수수료 명목으로 받았다. 최씨 등은 이 같은 수법으로 5년간 4800여개 업체에 190억원의 정부지원금을 받도록 했고, 이 중 58억원을 챙겼다.

허술한 정부 보안망·지원금 제도

최씨는 정보를 빼돌리는 과정에서 고용부로부터 단 한 번도 제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는 기업·개인 정보 12만건을 엑셀파일로 직접 빼내 메일 등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부처의 정부지원금에 대한 홍보 부족도 최씨의 범행을 부추겼다. 정부지원금 요건이 될 경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대다수지만 대부분 영세한 기업들은 제도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 일당의 노무법인에서 일했던 한 영업사원은 “주로 정보기술(IT), 건설, 해운업체를 대상으로 영업했는데 대부분 지원금 제도를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영기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정부지원금의 경우 수급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환급 조치가 이뤄져 노무사들은 잘 수임하지 않는 영역”이라며 “정부도 예산의 한계로 전면 홍보에 부담이 따랐고 그러다 보니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다”고 설명했다.

고용부 “재발 대책 마련”

고용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재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개인 정보 등을 출력 저장할 수 없도록 시스템 접근 권한을 제한하고, 대량 정보 조회 등 의심 가는 경우 자동경보가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정부지원금 지급절차 등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영세기업들이 브로커들에게 농락당하지 않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씨를 직위 해제하고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태호/강현우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