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도선사
‘도선사’라면 북한산 자락의 절부터 떠올릴 것인가. 도선사는 그만큼 낯선 직업이다. 한국에 250명밖에 안 되니 그럴 만하다. 도선사(導船士)란 항구를 드나드는 배의 안내인이다. 낯선 항구 사정을 잘 모르는 배들은 이들 ‘임시 선장’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다. 지난해 축구장 3배 넓이의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을 부산항에 댄 것도 한국 도선사 2명이었다.

이들의 연봉은 억대다. 한국고용정보원 집계를 보면 기업체 고위 임원(평균 1억988만원)과 국회의원(1억652만원)에 이어 세 번째 고액(1억539만원) 연봉이다. 정년도 65세 보장인데 2007년 이전 자격취득자는 68세까지이니 그야말로 꿈의 직업이다.

몸값이 높은 만큼 자격조건은 까다롭다. 6000t 넘는 배에서 5년 이상 선장으로 일하고 필기(영어·선박운용술·해사법규)와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10년 이상 머리를 싸매는 고시족도 많다. 지난해 6월에 10명을 뽑는데 108명이 지원해 1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합격자 평균 연령은 52세로 항해사 10년, 선장 10년 이상 경력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주·야간 당번을 정해 배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일을 맡는다. 배 1척 도선료는 27만원부터 250만원까지 다양하다. 갑판에 올라 부두까지 인도하는 데 평균 한 시간이 걸리는데, 두 시간이 넘는 동남아 등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 서양의 도선 역사는 고대 페니키아에서 시작됐으니 3000년이 넘었다. 1275년 마르코 폴로의 첫 인도양 횡단 땐 아랍인 도선사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대동미를 운송하던 선박에 수로 안내인을 두세 명씩 태웠다는 기록이 있다. 최초의 공식 도선사는 일제시대에 면허를 딴 유항렬 씨다. 도쿄상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상선회사에서 일하다 귀국한 그는 인천상륙작전 때 유엔군 함정을 안내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도선사들도 배를 인도할 때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고 한다. 돌풍이 부는 등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 예기치 못한 사고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부산항에 접안하던 컨테이너선이 부두의 하역 크레인들을 들이받는 바람에 도선사와 독일인 선장이 입건된 사고가 있었다.

엊그제 터진 여수항 원유 유출 사고의 도선사 경력도 23년이나 된다. 그러나 유조선이 접안 규정 속도인 2~3노트를 넘어 7노트로 진입하면서 송유관을 들이받은 것으로 드러나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도선사의 직업상 위험은 사고가 나야 비로소 드러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