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긴 고뇌도 간단히 무력화
상속 변호사 전성시대 노린 건가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법무부를 방문해 “여러분이 재판을 잘해야 법치국가가 된다”고 했다는 우스개가 기억난다. 대통령이나 되시는 분이 사법부와 행정부도 구분하지 못했을까마는 한동안의 말장난으로는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최근의 법무부야말로 입법과 행정을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난달 발표된 민법 개정안은 홀로 남겨진 배우자에게 ‘망자의 유언과 상관없이-아니 불구하고-’ 상속재산의 50%를 선취분으로 떼고 나머지를 자녀들과 1.5 대 1, 1,…의 비율로 상속토록 한 것이 골자다. 비율은 그대로지만 배우자 선취분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최소 50%+1.5는 배우자가 상속하도록 법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 특위까지 만든 결과라지만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난다.
물론 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홀로된 늙은 엄마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은 고령화 시대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덕목이 있다. 그러나 혼인 중 늘어난 재산의 절반은 원래부터 배우자 몫이었기 때문에 이를 현실화한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부부 별산제에도 불구하고 이혼시 재산의 최대 50%까지 여성의 몫을 인정한 것은 자녀 양육이나 이혼에 이르게 된 귀책, 내조의 경제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사안별 결과다. 판례에서도 20~30% 분할이 대세여서 50% 선취를 입법해야 할 근거가 없다.
반면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가족 간 소송이 폭발한다. 황혼 재혼은 사실상 금기시될 가능성도 크다. 어떤 자녀가 근본적인 재산 변동을 초래할 부모의 늘그막 재혼에 찬성할 것인가. 더구나 조기증여를 재촉하는 등 재산처분의 오랜 관행을 비틀게 될 것이다. 여론조사는 대부분 국민이 이 제도에 찬성한다지만 노모 봉양이라는 취지에 찬성한다는 것과 재산분할의 법적 강제는 그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도덕적 가치판단을 내포한 질문은 조건반사적 찬성을 유도해 낸다.
유언의 효력을 부인하는 규칙은 그 자체로 자유의 침해다. 물론 아파트 한 채라면 가족 간 합의로 해결할 일이며 좀 더 기다리면 어차피 노모조차 세상을 뜰 것이다. 시간의 지연일 뿐 결과는 같다. 민법 개정안 발의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업이라는 복합 유기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창업자는 노년에 들면 피땀 흘려 이룬 기업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 고뇌를 거듭한다. 경영권 상속은 축적하는 문명 행위의 본질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유언을 묵살한 채 배우자가 50%+1.5를 가져간다? 이 문제는 황혼 재혼의 경우 예외를 두는 등의 개인적이고도 예외적인 규칙을 제정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재산은 재산을 형성한 자에게 처분권이 있다. 평생에 걸쳐 이룩한 재산, 그것도 유기적이며 복잡한, 고도화한 기업이라면 처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배우자라는 이유로 초대형 기업의 경영권을 상속한다는 것은 기업을 에워싸고 있는 생태계 전체를 능멸하는 폭력적 강제다. 상속은 모든 현재의 관계뿐만 아니라 장래의 변동 가능성까지 감안한 재산권자의 심사숙고를 거친 처분행위다. 그 복잡한 숙려과정을 한두 개 민법 조항으로 간단하게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은 대체 어떤 법대 1학년생들의 짓인가.
어처구니없는 상법 개정안으로 작년 하반기 내내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법무부다. 준법지원인 제도를 기어이 관철시켜 기업 내에 이중삼중으로 법조인 취직자리를 만들어낸 경력은 자랑거리다. 이제 법조인의 조력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속변호사 전성시대를 만들어볼 작정인가.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