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통일 대박' 준비는 돼 있는가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은 명사나 공직자들이 점을 보러 다닌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이름난 점집 고객 명단의 윗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듣던 얘기다. 비전과 통찰로 미래의 흐름을 꿰뚫어 본다고 자처하는 정치 지도자들이나 재벌 총수들에 과학자, 전문가들까지 용한 점쟁이를 찾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명 진보는 미래 예측능력의 획기적인 신장과 궤를 같이한다.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사회와 정치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 역량 및 기법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천재지변이나 사회경제적 위기, 정치적 급변사태 등의 징후를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모니터링과 조사,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분석,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찾아 나가는 등 미래 예측 및 대처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것이 사실이다. 경제위기나 정변 같은 현상에서 주요 행위자들의 행태와 그 행태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의 추세나 여건 변화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해 예측해 내는 역량도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선지자들의 예언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들어맞더라도 위기나 재난을 피하지는 못했던 것이 역사의 비극적 진실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견해 ‘닥터 둠’이란 별명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닥칠 것이라 경고했지만 결국 우리는 무사히 2014년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 말한다면 여전히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누가 현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정의했나.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불확실한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누군가. 우리는 불확실성의 챔피언들이다. 돌이켜 보자. 1987년 레짐의 극복을 얘기하지만, 그 무렵만 해도 역사는 지루하게 느릿느릿 진행됐던 것 같다. 적어도 1997년 외환위기로 100년도 못 채우고 역사와 세계에 대망신을 당했을 때까지는. 그 후 우리는 마치 시간의 폭이 급격하게 줄어든 협곡에 몰려 월드컵 붉은 악마들의 함성을 뒤로한 채 한치 앞도 못 보고 숨 막히는 역사의 래프팅을 당했다.

‘리멤버 1219’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 뒤이은 총선쓰나미는 이미 한참 뒷페이지로 밀린다. 벌써 5년이 넘었던가. 수많은 촛불들이 서울 도심을 덮는 기현상을 뒤로하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를 거쳐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안철수 현상’이란 대진동이 왔다. 올해는 장성택 처형에 따른 북한발 불확실성과 더불어 시작됐다. 이 사건은 세계를 향해 한반도 불확실성의 진면목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이만하면 한반도야말로 가히 불확실성의 프리미엄 리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아무리 예측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모든 재난이나 위기는 바로 그 직전엔 예측이 가능하다.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쓰나미가 오기 몇 시간 전 예측이 가능한 것처럼. 그러나 관건은 예측 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에 있다. 정말 심각한 초대형 천재지변이나 위기는 그 기간이 극히 짧아 대처할 겨를이 없는 경우다.

그렇다면 통일은 어떨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긍정적인 의미가 큰 얘기지만 대박이기에 앞서 정말 위기이자 시련이기에 걱정이 앞선다. 마음만 벅찬 게 아니라 감당하기 벅찬 위기 중의 위기이기 때문에. 조만간 통일이 이뤄진다 해도 우리에게 통일에 대비하는 데 주어질 시간은 얼마일까. 지금부터, 항상 지금부터라고 말하고, 늦었더라도 그때가 가장 이른 시점이라고 해왔지만, 결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진 않을 것 같다.

과연 통일의 전조와 전망을 충실히 분석, 예측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매년 연례행사처럼 점술가에게 한반도 운세를 묻는 식은 아니겠지만 정보분석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정말 통일이라는 불확실성에 제대로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