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평가 문제로 갑론을박해온 서울지방변호사회와 대법원이 어제 간담회를 가졌으나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서울변회가 평가 등급이 낮은 소위 불량판사 이름을 공개하겠다고 나서면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법관 평가는 물론 양면성이 있다. 변호사들의 평가가 자칫 법정의 엄정성에 도전하거나 변호사들의 여론재판을 의미할 수도 있다. 깐깐한 판사 길들이기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하지만 법원이 한사코 실명 공개를 막는 것 역시 국민 눈에는 좋게 비치지 않는다.

문제는 법원과 법정, 판사들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법정에서 내려지는 판결이나 개별 판사들의 불거져 나오는 행동들에 대한 신뢰추락은 이미 너무도 심각하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에 이른 것도 현실이다. 우리는 변호사들이 법관을 평가할 만한 공정성도 냉정성도 공익성도 없다고 보지만 변호사들이야말로 그런 여론을 잘 알고 있기에 법관 평가를 사회적 이슈로 들고 나왔을 것이다.

판사에 따라 유무죄가 달리 나오고 정치사건만 되면 편향성 논란이 튀어나오는 현실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든 말든 다중의 힘이면 무죄가 되는 그런 법정이 존중받을 수는 없다. 전교조 교사들의 이름은 당연히 학부모의 알권리에 속하겠지만 법정이 이를 막고 말았다. ‘가카빅엿’에 반말조의 훈계와 훈시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좌편향 종북 판사들까지 활개친다는 법정이다. 그런데도 판사재임용제 도입 25년 동안 탈락자는 5명뿐이었다고 한다. 법원 내부의 검증장치나 평가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판사의 자질을 따지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공정한 재판을 받자는 거다. 국민들에겐 저질 판사를 기피할 분명한 권리가 있다. 특정 판사의 졸렬한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법정의 언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정치적 계산부터 한다면 이미 법관이 아니다. 우리는 대법원이 스스로 불량판사를 퇴출시키기를 바라지만 언제까지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