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붕괴 25년, 게르만의 비상] '대연정'이 경제 키운다…"국민 잘살게 하고, 기업 살리는 데 여야 따로 없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8) 타협과 상생의 독일 정치
2013년 11월27일 오전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의사당(Bundestag). 집권 여당인 기독민주당(기민당)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지그마르 가브리엘 사회민주당(사민당) 당수, 호르스트 제호퍼 기독사회당(기사당) 당수 등 세 사람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사진). 기민당과 사민당 간 역사상 세 번째 대연정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세 사람은 전날부터 당일 새벽까지 무려 17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협상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집권여당인 기민·기사당이 지난해 9월 총선에서 확보한 의석 수는 총 631석의 과반에서 단 5석 모자라는 311석이었다. 한국 정치였다면 ‘의원 영입’이라는 유혹에 끌릴 법했다. 독일의 정치는 달랐다.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택했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밤늦게 사민당 당사를 직접 찾아갔다. 사민당의 공약인 최저임금 인상과 이중국적제 일부 허용까지 받아들였다. 사민당도 대기업 및 고소득자에 대해 증세를 하자던 요구를 접었다. 185쪽에 달하는 대연정 협약서가 만들어졌다. 총 14개의 장관직 중 경제부 등 6개 자리를 사민당에 내줬다.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 스스로가 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를 맡았다.
대연정은 타협과 상생을 근간으로 한 독일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독일은 대연정을 세 번이나 성사시켰다.
첫 번째 대연정은 기민당 출신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전 총리(1966~1969년 집권)가 이끌었다. 당시 사민당은 빌리 브란트 전 당수가 외무장관에 기용되는 등 연방 내각에 첫 진출하는 기쁨을 누렸다.
두 번째 대연정은 메르켈 총리가 처음 집권하던 2005년 이뤄졌다. 메르켈 총리와 마티아스 플라체크 전 사민당 당수가 주도했다. 양당이 내걸었던 많은 공약에서 상호 양보를 통해 절충점을 찾았다. 부가가치세 인상률은 높아졌고 대신 연금 등 사회보장 혜택은 축소됐다.
독일 정치의 교훈은 이 같은 ‘타협과 상생’의 정신이다. 뿐만 아니다. 정책의 연속성도 빼놓을 수 없다. 연금 축소와 미니잡 등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담긴 ‘하르츠 개혁’은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추진했다. 그러나 이를 계승, 발전시킨 것은 메르켈 총리와 기민당이었다.
집권하면 라이벌 정권이 추진해온 정책의 ‘뒤집기’가 되풀이되는 한국의 정치풍토와는 대비된다. 국민을 잘살게 하고, 기업을 살리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 바로 독일 정치의 힘이다.
한경·POSCO 포스코경영연구소 공동기획
베를린=이호기 기자/최용혁 POSRI 책임연구원 hglee@hankyung.com
세 사람은 전날부터 당일 새벽까지 무려 17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협상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집권여당인 기민·기사당이 지난해 9월 총선에서 확보한 의석 수는 총 631석의 과반에서 단 5석 모자라는 311석이었다. 한국 정치였다면 ‘의원 영입’이라는 유혹에 끌릴 법했다. 독일의 정치는 달랐다.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택했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밤늦게 사민당 당사를 직접 찾아갔다. 사민당의 공약인 최저임금 인상과 이중국적제 일부 허용까지 받아들였다. 사민당도 대기업 및 고소득자에 대해 증세를 하자던 요구를 접었다. 185쪽에 달하는 대연정 협약서가 만들어졌다. 총 14개의 장관직 중 경제부 등 6개 자리를 사민당에 내줬다.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 스스로가 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를 맡았다.
대연정은 타협과 상생을 근간으로 한 독일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독일은 대연정을 세 번이나 성사시켰다.
첫 번째 대연정은 기민당 출신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전 총리(1966~1969년 집권)가 이끌었다. 당시 사민당은 빌리 브란트 전 당수가 외무장관에 기용되는 등 연방 내각에 첫 진출하는 기쁨을 누렸다.
두 번째 대연정은 메르켈 총리가 처음 집권하던 2005년 이뤄졌다. 메르켈 총리와 마티아스 플라체크 전 사민당 당수가 주도했다. 양당이 내걸었던 많은 공약에서 상호 양보를 통해 절충점을 찾았다. 부가가치세 인상률은 높아졌고 대신 연금 등 사회보장 혜택은 축소됐다.
독일 정치의 교훈은 이 같은 ‘타협과 상생’의 정신이다. 뿐만 아니다. 정책의 연속성도 빼놓을 수 없다. 연금 축소와 미니잡 등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담긴 ‘하르츠 개혁’은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추진했다. 그러나 이를 계승, 발전시킨 것은 메르켈 총리와 기민당이었다.
집권하면 라이벌 정권이 추진해온 정책의 ‘뒤집기’가 되풀이되는 한국의 정치풍토와는 대비된다. 국민을 잘살게 하고, 기업을 살리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 바로 독일 정치의 힘이다.
한경·POSCO 포스코경영연구소 공동기획
베를린=이호기 기자/최용혁 POSRI 책임연구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