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임원, 고려대 퇴조…상고·지방대 떴다
은행 임원 인사는 역시 정치바람을 타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 시절 임원 인사 때마다 위세를 떨쳤던 고려대 인맥이 박근혜 정부 출범 뒤 뚜렷한 퇴조세를 보이고 있다. 대신 실적을 앞세운 지방대와 상고 출신이 약진하며 빈자리를 채우는 모양새다. 작년 2월 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단행된 6대 시중은행의 부행장 승진 인사에서 나타난 모습이다.

◆덕수상고 출신 3명 부행장에

은행원들의 꿈은 누구나 행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행장을 목표로 삼는 뱅커가 많다. 행장은 관료 등 외부 출신이나 정치권을 업고 입성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부행장이 실력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자리로 간주된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외환 등 6대 시중은행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근까지 부행장(부행장보 포함)으로 승진한 사람 32명을 분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사 결과 승진자 32명 중 상고 출신이 8명으로 25%에 달했다. 1970~1980년대 ‘금융사관학교’로 불렸던 덕수상고(현 덕수고) 출신이 3명으로 가장 많았다. 민경원(농협), 이영준(하나), 최병화(신한) 부행장 등이 덕수상고를 나왔다.

덕수상고 외에도 당시 지역의 유명 상고에서 임원을 상당수 배출했다. 국민은행의 백인기(동대문상고) 부행장, 우리은행의 정원재(천안상고)·이용권(광주상고) 부행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명성을 유지했던 ‘명문 상고’의 마지막 세대들이 부행장으로 발탁됐다”며 “영업 등 실무 전문가를 높이 평가하는 게 요즘 인사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대학별로는 지방대 출신이 8명으로 25%에 달했다. 상고 출신 8명과 합하면 부행장 승진자의 절반인 16명이 지방대와 상고 출신으로 채워진 셈이다.

서울대가 4명으로 가장 많은 승진자를 배출했다. 이명박 정부 때 부상했던 고려대 출신은 2명으로, 연세대 서강대 한양대 한국외국어대 등과 차이가 없었다. 2011년 하반기와 2012년 상반기 인사에서 부행장 승진자 40여명 중 8명이 고려대 졸업자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고려대 출신 기존 부행장들도 상당수 자리를 떠났다. 지난 한 해 국민·신한·우리은행 등에서 고려대 출신 부행장이 한두 명씩 퇴임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려대 출신인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잇따라 퇴임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한은행 부행장 승진자 가장 젊어

신임 부행장들의 평균 나이는 은행별로 4.6세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외환은행이 평균 58.0세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은 53.4세로 가장 젊었다. 농협은행 57.0세, 우리은행 56.4세, 국민은행 55.8세, 하나은행 55.6세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급성장한 신한 하나 등은 실적 위주 인사로 젊은 부행장을 발탁할 때가 많은 반면 외환과 농협은 상대적으로 정년 보장 문화가 강하다”고 말했다.

6개 은행 신임 부행장의 평균 나이는 55.7세로 조사됐다. 입행 당시 나이(26.8세)를 고려하면 부행장이 되기까지 평균 28.9년 걸린 셈이다.

출신지는 서울이 11명으로 최대 규모다. ‘TK(대구·경북)’가 7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 정권에 이어 TK 출신이 꾸준한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 시·도는 전부 1~2명으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경영학이 7명으로 1위에 올랐다. 법학 정치외교학이 각각 3명, 경제학은 2명으로 조사됐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