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다시 몰리는 재정위기국…유로존 채권시장 불 붙었다
스페인 은행 방키아는 유럽 재정위기를 악화시킨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부실한 지방 저축은행을 모아서 만든 방키아는 스페인 정부가 억지로 상장을 시켜주고 국민들에게 반강제로 주식을 사게 하면서까지 자금을 대줬는데도 2012년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유럽 4위 경제대국 스페인은 방키아를 살리기 위해 2012년 유럽중앙은행(ECB)에 손을 벌려야 했고, 시장에선 ‘스펙시트(spexit·스페인의 유로존 퇴출)’ 설까지 돌았다.

그랬던 방키아가 채권시장에 돌아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방키아는 9일(현지시간) 10억유로 규모의 연이율 3.5% 무담보 선순위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원금보장이 안 되는 채권인데도 무려 발행금액의 세 배가 넘는 35억유로가 몰렸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국 은행들은 잇따라 채권 발행에 성공하고 있다.

방키아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를 망친 은행’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얼라이드아이리시도 지난해 11월 5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은행뿐 아니다. 포르투갈은 9일 32억5000만유로 규모의 5년 만기 국채를 내놨는데, 무려 110억유로의 자금이 몰렸다. 지난 7일에는 아일랜드 국채도 매진됐다. 최근 아일랜드 5년 만기 국채금리는 영국과 비슷한 수준인 연 1.8%대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흥행은 유럽 경제가 바닥을 쳤다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장클로드 트리셰 전 ECB 총재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지진 않을 것”이라며 “재정 건전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최근 ECB가 추진하는 ‘은행 동맹’으로 역내 은행에 대한 통합 관리가 조만간 시작될 것인 만큼 은행이 부실화할 가능성도 전보다는 낮아졌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물론 이 같은 투자 성향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JP모간은 “유로존 경제는 지표상 나아진 게 없는 만큼 나쁜 뉴스들이 나올 경우 시장 상황은 급격하게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ECB가 추진하는 은행 동맹은 예전보다 더 엄격하게 투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