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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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니스센터(헬스 클럽), 어학원, 서점…. 새해 초만 되면 늘 ‘반짝 특수’를 누리는 곳이다. 올해는 반드시 ‘식스팩’을 완성하고, 원어민 못지않은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추며,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지성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몰려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는 일이 많다.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담배 판매량도 1월에 급감했다가 2~3월이 되면 애년 수준을 회복한다고 한다.

올해도 전국의 수많은 김과장 이대리들이 저마다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새해를 맞았다. “이번만큼은 작심삼일은 없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착한 상사가 돼 줄게”

“앞으로 내가 오후 9시 넘어 전화하면 절대 받지 마.” 한 전자부품 생산업체에 다니는 박 차장은 새해 첫 근무일에 후배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소문난 주당인 박 차장은 가볍게 시작한 저녁 술자리판을 키우고 키워 ‘파국의 술판’으로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반주를 걸치다 슬슬 취기가 오르면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야? 나 지금 회사 앞인데 잠깐 나오지?”라며 불러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기절하기 직전인 후배 몇 명을 데리고 오전 2~3시까지 달리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 어지간히 취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필름이 끊기는 사태가 빚어지자 호기롭던 박 차장은 절주를 결심하고,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퇴근 후 집에서 쉬다가 갑자기 불려 나가곤 했던 후배들은 대환영이다. “일찍 잠이 드는 바람에 오후 11~12시 넘어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기라도 하면 다음날 아침에 뒤끝이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후배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새해 약속을 꼭 지켜주기 바랍니다.”

후배들에게 핏대를 자주 세우기로 유명한 최 부장의 새해 목표는 ‘절대 욱하지 않기’다. 지난달 한 팀원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시는 건 좋지만 매번 불같이 화를 내며 모욕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참기 힘들다”며 장문의 이메일을 남기고 회사를 떠나고 나서다. 작년 말 상향평가에서 “‘의사소통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평가가 많았다”는 귀띔을 받은 것도 최 부장에겐 충격이었다고 한다.

‘관계의 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같은 자기계발서를 잔뜩 꽂아 놓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최 부장. 다행히 새해 들어 1주일째 화를 내지 않았다. “보고서가 이게 뭐야!”라고 버럭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김 대리가 열심히 고민해서 쓴 게 보이네. 그런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라고 나긋나긋 조언하는 것이 스스로도 어색할 정도. 툭 하면 화를 내던 최 부장이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면 직원들의 사내 메신저엔 “되게 낯설다” “갑자기 왜 저러지” “더 불안하다” 등의 반응이 오간다.

“중독에서 벗어날래요”

서울 광화문의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골드 미스’ 정 과장이 올해 꼭 끊기로 한 것은 술도 담배도 아닌 ‘택시’와 ‘아메리카노’다. 지하철 공덕역(마포구) 근처에 있는 정 과장의 집과 직장 사이 거리는 5㎞ 남짓. 지하철 5호선을 타면 네 정거장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박 과장은 입사 초반 택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늘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작년에 교통카드로 쓴 택시 요금이 300만원이 넘는 걸 발견하고 충격받았어요. 5000원권 한 장이면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으니 ‘시간 절약하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했는데 입사하고 택시비만 2000만원은 썼다는 거잖아요.”

회사 건물 로비에 있는 ‘별다방(스타벅스)’에서 하루 최소 두 잔씩 사 마시는 아메리카노 역시 지갑을 야금야금 비우는 주범이라는 게 박 과장의 판단이다. 사무실에 놓인 스틱 원두커피는 바리스타 커피에 길든 그녀의 고급스러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정 과장은 “택시비와 커피값을 모아 꼭 시집가는 데 보태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결혼한 지 3년이 넘었지만 마음은 늘 새신랑이라는 남 대리는 지난 1일부로 거실에 있는 TV를 없애버렸다. 새해에는 이제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결심에서다. 남 대리는 “퇴근 후 지쳐서 아이랑 놀아주기 힘들 땐 ‘뽀로로’를 틀어주곤 했는데 한 시간쯤 ‘멍 때리고’ TV만 보고 있는 아들을 보니 미안해졌다”며 “그 시간에 그림책이라도 같이 보는 게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송 3사의 일일드라마를 모두 챙겨보던 아내는 조금씩 금단현상이 오는 눈치다. 하지만 TV를 치운 이후 며칠간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확연히 늘어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예인 같은 몸, 올해는 꼭!”

정보기술(IT) 회사 총무팀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기존에 애용하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올해부터 모두 끊기로 했다. 세밑부터 새해 벽두를 즈음해 SNS로 쉴 새 없이 쏟아진 ‘영혼 없는’ 신년 축하메시지를 보며 ‘이것이 진정한 소통인가’라는 다소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목 디스크 초기 진단까지 받은 것도 SNS에 대한 회의감을 키웠다.

김 대리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500명을 넘었지만 회사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이제는 SNS에도 솔직한 글을 쓸 수 없다”며 “SNS를 끊은 지 1주일이 됐는데 일시적 금단현상만 참으면 불편한 점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앞으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SNS 대신 무조건 책을 읽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건설사에 다니는 4년차 직장인 정 과장은 반대로 SNS를 활용해 ‘배수진’을 치고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경우다. 그는 1월1일 페이스북에 웃통을 벗은 자신의 누드사진을 올렸다. “연말까지 몸무게를 10㎏ 이상 빼고 식스팩을 만들겠습니다. 실패하면 모든 페친에게 호텔 뷔페를 쏘겠습니다.”

‘혐짤(혐오스러운 사진)’ 올리지 말라는 악플(악성 댓글)이 몇 개 달리긴 했지만, 페친들은 ‘좋아요’를 50개 넘게 눌러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줬다. “호텔 뷔페값으로 수백만원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며 정 과장은 신년 벽두부터 헬스클럽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임현우/박한신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