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툭하면 욱, 달리는 술판 끝…믿어? 말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올해는 꼭! 새해 결심 - 상사의 착한 다짐…"작심 365일 부탁해요"
끊을 게 술·담배 뿐이랴
택시·커피, 이 죽일놈의 중독…이 비용만 아껴도 결혼할텐데…
식스팩 실패하면 뷔페 쏜다
SNS에 누드 올려 몸짱 선언…악플에도 돈 생각에 결심 '꾹'
끊을 게 술·담배 뿐이랴
택시·커피, 이 죽일놈의 중독…이 비용만 아껴도 결혼할텐데…
식스팩 실패하면 뷔페 쏜다
SNS에 누드 올려 몸짱 선언…악플에도 돈 생각에 결심 '꾹'

올해도 전국의 수많은 김과장 이대리들이 저마다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새해를 맞았다. “이번만큼은 작심삼일은 없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착한 상사가 돼 줄게”
“앞으로 내가 오후 9시 넘어 전화하면 절대 받지 마.” 한 전자부품 생산업체에 다니는 박 차장은 새해 첫 근무일에 후배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소문난 주당인 박 차장은 가볍게 시작한 저녁 술자리판을 키우고 키워 ‘파국의 술판’으로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반주를 걸치다 슬슬 취기가 오르면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야? 나 지금 회사 앞인데 잠깐 나오지?”라며 불러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기절하기 직전인 후배 몇 명을 데리고 오전 2~3시까지 달리는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 어지간히 취했다 싶으면 여지없이 필름이 끊기는 사태가 빚어지자 호기롭던 박 차장은 절주를 결심하고,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퇴근 후 집에서 쉬다가 갑자기 불려 나가곤 했던 후배들은 대환영이다. “일찍 잠이 드는 바람에 오후 11~12시 넘어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기라도 하면 다음날 아침에 뒤끝이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후배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새해 약속을 꼭 지켜주기 바랍니다.”
후배들에게 핏대를 자주 세우기로 유명한 최 부장의 새해 목표는 ‘절대 욱하지 않기’다. 지난달 한 팀원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시는 건 좋지만 매번 불같이 화를 내며 모욕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참기 힘들다”며 장문의 이메일을 남기고 회사를 떠나고 나서다. 작년 말 상향평가에서 “‘의사소통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평가가 많았다”는 귀띔을 받은 것도 최 부장에겐 충격이었다고 한다.
‘관계의 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같은 자기계발서를 잔뜩 꽂아 놓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최 부장. 다행히 새해 들어 1주일째 화를 내지 않았다. “보고서가 이게 뭐야!”라고 버럭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김 대리가 열심히 고민해서 쓴 게 보이네. 그런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라고 나긋나긋 조언하는 것이 스스로도 어색할 정도. 툭 하면 화를 내던 최 부장이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면 직원들의 사내 메신저엔 “되게 낯설다” “갑자기 왜 저러지” “더 불안하다” 등의 반응이 오간다.
◆“중독에서 벗어날래요”
서울 광화문의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골드 미스’ 정 과장이 올해 꼭 끊기로 한 것은 술도 담배도 아닌 ‘택시’와 ‘아메리카노’다. 지하철 공덕역(마포구) 근처에 있는 정 과장의 집과 직장 사이 거리는 5㎞ 남짓. 지하철 5호선을 타면 네 정거장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박 과장은 입사 초반 택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늘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작년에 교통카드로 쓴 택시 요금이 300만원이 넘는 걸 발견하고 충격받았어요. 5000원권 한 장이면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으니 ‘시간 절약하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했는데 입사하고 택시비만 2000만원은 썼다는 거잖아요.”
회사 건물 로비에 있는 ‘별다방(스타벅스)’에서 하루 최소 두 잔씩 사 마시는 아메리카노 역시 지갑을 야금야금 비우는 주범이라는 게 박 과장의 판단이다. 사무실에 놓인 스틱 원두커피는 바리스타 커피에 길든 그녀의 고급스러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정 과장은 “택시비와 커피값을 모아 꼭 시집가는 데 보태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결혼한 지 3년이 넘었지만 마음은 늘 새신랑이라는 남 대리는 지난 1일부로 거실에 있는 TV를 없애버렸다. 새해에는 이제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결심에서다. 남 대리는 “퇴근 후 지쳐서 아이랑 놀아주기 힘들 땐 ‘뽀로로’를 틀어주곤 했는데 한 시간쯤 ‘멍 때리고’ TV만 보고 있는 아들을 보니 미안해졌다”며 “그 시간에 그림책이라도 같이 보는 게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송 3사의 일일드라마를 모두 챙겨보던 아내는 조금씩 금단현상이 오는 눈치다. 하지만 TV를 치운 이후 며칠간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확연히 늘어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예인 같은 몸, 올해는 꼭!”
정보기술(IT) 회사 총무팀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기존에 애용하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올해부터 모두 끊기로 했다. 세밑부터 새해 벽두를 즈음해 SNS로 쉴 새 없이 쏟아진 ‘영혼 없는’ 신년 축하메시지를 보며 ‘이것이 진정한 소통인가’라는 다소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목 디스크 초기 진단까지 받은 것도 SNS에 대한 회의감을 키웠다.
김 대리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500명을 넘었지만 회사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이제는 SNS에도 솔직한 글을 쓸 수 없다”며 “SNS를 끊은 지 1주일이 됐는데 일시적 금단현상만 참으면 불편한 점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앞으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SNS 대신 무조건 책을 읽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건설사에 다니는 4년차 직장인 정 과장은 반대로 SNS를 활용해 ‘배수진’을 치고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경우다. 그는 1월1일 페이스북에 웃통을 벗은 자신의 누드사진을 올렸다. “연말까지 몸무게를 10㎏ 이상 빼고 식스팩을 만들겠습니다. 실패하면 모든 페친에게 호텔 뷔페를 쏘겠습니다.”
‘혐짤(혐오스러운 사진)’ 올리지 말라는 악플(악성 댓글)이 몇 개 달리긴 했지만, 페친들은 ‘좋아요’를 50개 넘게 눌러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줬다. “호텔 뷔페값으로 수백만원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며 정 과장은 신년 벽두부터 헬스클럽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임현우/박한신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