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1. 전남 화순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박모씨(65)는 지난달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비상등을 켜고 정지해 있는 차량을 주행 중인 것으로 착각한 박씨는 급하게 피하려다 중앙분리대를 받았다. 박씨는 큰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뒤따라오던 승합차의 운전자는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어딘가 홀린 듯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며 “최근 눈이 침침해졌는데 큰 지장이 없어 계속 운전한 게 화근이었다”고 털어놨다.

#2. 직장인 이모씨(27)는 지난달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입원 중이다. 사고 당일 이씨는 녹색등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새벽이었지만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고가차도에서 달려 내려오던 검은색 승용차가 급정거하면서 이씨를 치었다. 승용차 운전사는 72세의 김모씨.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날이 어두워 신호등을 보지 못했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가 미끄러졌다”고 진술했다.

고령 운전자로 분류되는 65세 이상 ‘실버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집중력과 운동 능력이 떨어져 돌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해서다. 고령 운전자 사고는 치사율이 일반 교통사고보다 두 배나 높아 사망보험금 지급액도 증가 추세다.

○65세 이상 교통사고 50% 증가


[경찰팀 리포트]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예전같지 않다? 위험 싣고 달리는 고령 운전자 차량들
정부는 65세 이상 운전자를 ‘고령 운전자’로 분류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이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충남 아산)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는 2008년 1만132건에서 2012년 1만5190건으로 50% 증가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중 고령 운전자 사망 비율도 높아졌다. 2008년 교통사고 사망자 중 고령 운전자 비율은 9.5%였지만 지난해에는 13.3%로 높아졌다.

고령 운전자 사고가 늘면서 사고를 처리하는 보험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손해보험사 대인담당 직원 이모씨(31)는 지난해 9월 고령 운전자와 보행자 사이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접수했다. 보행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운전자 김모씨(71)는 사고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고, 보행자의 진술에 현혹돼 “횡단보도 부근인 것 같다”고 인정했다. 뭔가 석연치 않았던 이씨는 당시 사고 목격자를 찾아 나섰고 이 사고가 횡단보도에서 80m 떨어진 곳에서 무단횡단하다 발생한 것임을 밝혀냈다. 이씨는 “고령 운전자들은 사고 이후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치사율은 전체가 2.4명인데 고령 운전자 사고는 4.4명에 이른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고령 운전자 사망 보험금 지급액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보험업계도 100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운전자 보험 등 고령 운전자 상품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운동신경 저하가 원인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운동신경 저하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기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고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노화에 따른 신체기능 저하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며 “정도 차는 있지만 시력과 청력, 반응 속도는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고령자 운전을 일괄 제한하기는 어렵다. 형평성 문제는 물론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택시 기사들의 생존권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법인택시 기사 4만400여명 중 60대 이상 운전자가 8175명으로 20.2%를 차지하고 있다.

30년 넘게 택시를 운전 중인 이상구 씨(67)는 “지금도 하루 15시간 운전하지만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다”며 “택시운수업도 노년층의 일자리 중 하나인데 운전을 규제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부는 운수업에서 정년을 따로 두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업계 반발로 중단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해 택시기사 정년을 70세로 두고 운전 적성 정밀검사를 통해 정년을 최대 75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심사 과정에서 과도한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며 “법안 제정 전 2년마다 정밀검사를 받는 안을 다시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업계 반발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전남 구례경찰서 생활교통안전과 직원들이 3일 관할지역 내 70세 이상 노인 운전자의 차량에 카네이션 모양의 실버마크를 붙이고 있다. 
구례경찰서 제공
전남 구례경찰서 생활교통안전과 직원들이 3일 관할지역 내 70세 이상 노인 운전자의 차량에 카네이션 모양의 실버마크를 붙이고 있다. 구례경찰서 제공

○초보 운전자처럼 고령 운전자도 배려를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에게 차별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으면서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인센티브제도다. 현재 만 65세 이상 일반 운전자가 교통안전공단이 주관하는 안전교육을 받고 간단한 시험을 통과하면 보험료가 5% 할인되는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전체 운전자의 적성검사 기간을 줄이고 적성검사 항목을 세분화하는 방법도 나왔다. 윤병현 서울 용산경찰서 교통과장은 “일정 연령 이상에만 적성검사를 강화한다면 차별이 되기 때문에 전 연령대에 적성검사 요건을 보다 세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고령 운전자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모든 운전자가 정기점검을 받아 운전자와 승객 모두 안전할 수 있도록 검사를 체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 운전자를 배려하는 운전문화 정착도 필요한 시점이다. 경찰청은 현재 고령 운전자 차량을 인식할 수 있도록 스티커 부착을 권장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 차량을 발견할 경우 초보운전자에게 배려하는 것과 같은 운전문화가 정착되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령 운전자에게 양보하는 문화나 고령 운전자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상익/홍선표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