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1급 간부 전원이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총리 산하 10명이나 되는 최고위 공무원들이다. 청와대 의중이 반영됐다니 다른 부처로 파문이 번질 것이 확실하다. 시대 변화에 모르쇠인 관료사회에 이번에야말로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라면 그 결과를 기대해볼 만할 것이다.

복지부동, 철밥통, 규제남발…. 한국 공직의 후진성을 새삼 거론하자면 끝도 없다. 철도파업도 궁극적인 책임자는 관료들이다. 천문학적인 부채도, 무소불위의 정치 노조도, 공기업을 감싸고 결탁해온 일선 관료들이 수십년간 쌓아왔던 삼류 행정의 적폐일 뿐이다. 비(非)공무원 출신 장관이 오면 한편으론 구슬리고 한편으론 을러 처음부터 무능 장관으로 만들어온 것이 관료들의 기술이다. 정부 개혁을 외치지 않은 정권이 없었지만 한 번도 성과를 못 낸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3급 이상을 대상으로 개방형 공직제도를 도입했지만 외부 충원은 7%에 불과하다. 왕따 만들어 주리를 틀면 배겨날 사람이 없는 거다.

이런 공직사회를 흔들어 깨워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 대통령이요, 대리인인 장·차관들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문제다. 장·차관들의 지력이 떨어지면 관료들을 다룰 수 없다. 22일간의 철도파업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은 무엇을 했고, 국토교통부 장관은 뭘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민영화 요금폭탄’ 괴담이 흉흉해도 국내외 요금체계를 상세하게 분석한 자료를 낸 부처가 없었다. 창조경제가 뭐냐는 질문에 미래부 장관은 정리된 대답조차 내놓지 못했다. 어떤 장관은 기초연금 문제에서 관료들에게 포획된 듯했고 방통위나 공정위는 경제민주화 바람에 얹혀 규제만 더 생산해내는 충실한 관료이익의 대변자에 불과했다.

한경의 신년 설문에서 경제장관들이 낙제점을 받은 사실이 말해주는 그대로다. 물론 장관들이 인사권을 쥐고 있지 못하니 통솔할 힘도 없었을 것이다. 누누이 지적해온 바 있지만 관료적 성실성만으로 일하는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1급이 아니라 장·차관의 무소신과 무정견이 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