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철도파업 관련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철도파업 관련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가 2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본부에 공권력을 투입하면서 불법 노동운동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한다”는 ‘불관용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비록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강성 노조의 핵심인 민주노총 본부라도 불법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함에 따라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주요 노동 현안에 대한 노·사·정 대화가 중단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노총에 첫 공권력 투입

정부가 강경진압에 나선 것은 철도노조의 ‘떼쓰기’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대체인력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다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반대’라는 이슈에서 벗어나 박근혜 정부 반대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본부에 처음으로 공권력을 투입한 것도 외부세력과 연계한 정치파업을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3층 합동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철도파업은 정부가 그동안 수차례 민영화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라고 주장하면서 파업을 강행하고 있어 명백한 불법 파업”이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철도노조 핵심 지도부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정부의 영장집행은 어떤 단체나 개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장관도 “수서발 KTX 자회사에는 민간 자본 참여가 없도록 하겠다”며 “민간에 매각할 경우에는 면허가 취소되도록 하는 확실한 민영화 방지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강력 반발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국장은 “공권력 투입은 불법 파업을 한 철도노조에 대한 것이지 민주노총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민주노총과 국민이 잘 구분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날 비상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한 뒤 “오는 28일 총파업을 결의하고 모든 조직을 총결집해 정권의 심장부에 분노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23일 하루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위한 확대간부 파업을 벌이고 매일 촛불집회를 열 방침이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침탈은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것”이라며 “철도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강제 진입으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은 모두 청와대에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통상임금과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을 앞둔 시점에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법과 원칙만큼 노·사·정이 대화와 타협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내달 22일 위원장 선거를 치를 예정인데 이번 공권력 투입으로 한국노총 내 강경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노사 대화 단절되나

이번 공권력 투입으로 정부와 노동계 간 대화가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후속조치로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계를 자극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고용부는 내달 말 자문 기구격인 임금제도개선위원회가 임금체계 개편안을 확정해 노사정위에 넘기면 노동계를 비롯한 각계의 여론을 반영해 최대한 서둘러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전문가들은 산적한 노동 현안 해결을 위해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 부문 내에서 경쟁을 도입한 공항이나 도시철도 사례를 통해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국민 여론과 국제사회의 반응이 나빠질 수 있고 노동계는 힘을 더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현우/양병훈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