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는 희고 무르고/모가 나 있다/두부가 되기 위해서도/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두부로 살기 위해서도/열두 모서리/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두부도 있고/이기지 않으려고,/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모 나는 두부도 있다/두부같이 무른 나도/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두부는 질감과 식감 그리고 어감(語感)까지, 그야말로 두부처럼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그런 두부도 겉으론 모나고 뿔난 모습. 먹히지 않기 위해, 씹히지 않기 위해 선택한 보호색 같은 걸까요. 다리미로 날카롭게 벼린 정장과 뾰족한 구두는, 두부처럼 여렸던 내게 주어진 무기일까요.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