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나폴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호주 시드니항 앞바다에 관광용 크루즈로 운영되는 19세기식 범선이 떠있다.  호주관광청 제공
이탈리아 나폴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호주 시드니항 앞바다에 관광용 크루즈로 운영되는 19세기식 범선이 떠있다. 호주관광청 제공
장난기 가득한 비글 한 마리가 일렬로 늘어선 짐 대여섯 개를 지나가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호주 시드니공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마스코트인 검역탐지견이다. 줄 맨 앞에 선 중년 여성의 검정색 손가방에 멈춰서더니 코를 들이박는다. 백발의 검역관이 가방을 열어본다. “특별한 건 없군.” 혼잣말을 하며 공항 밖으로 나가도 좋다고 말한다. 호주 정부가 자국의 야생동물과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음식물, 약품 등의 검역과 통관을 까다롭게 규제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복잡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방금 전 비글이 그랬던 것처럼 시드니의 공기를 크게 들이쉬었다. 시원한 바다 향과 건조한 사막 냄새, 오렌지빛 햇살이 기분 좋은 여기는 시드니다.

19세기식 돛단배 타고 시드니항 유람

첫날 오후 1시, 시드니 항구의 왈시 베이에서 범선(돛단배)을 타기로 했다. 1922년 만든 이 배의 이름은 사우던 스완. 1850년대 골드러시 시대의 배를 본떠 만들었다. 호주의 한 개인이 갖고 있던 이 배는 캐나다인, 영국인의 손을 거쳐 2007년 중국계 회사에 소유권이 넘어가는 등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외국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을 안타깝게 여긴 지금의 선장 마티 우즈가 그해에 사들여 관광용 크루즈로 운영하고 있다. 부인을 비롯한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가족기업이다. 선장 가족들은 ‘과거 해양의 역사를 동시대인에게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관광객을 태우고 바다를 가로지른다.

범선에 오르니 시드니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높디높은 하늘엔 하얀구름이 가득하고, 바다는 그 푸른 색깔만큼이나 깊은 여운을 준다.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감옥이자 수비대가 머물던 데니슨 요새를 거쳐 두 시간가량을 항해하며 꿀 같은 점심식사를 했다.

바다 위에서의 낭만도 잠시. 배의 돛대를 붙잡고 올라가는 마스트클라임이 기다리고 있다. 안전장치를 달고 한 계단, 두 계단 하늘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휘청휘청 흔들흔들. 배의 움직임에 따라 사다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아닌가. 고소공포증 앞에서 자존심은 사치였다. “저 내려주세요.” 돛 상층부까지 오르는 데 성공한 일행에게 감상을 물으니 “갑판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을 만큼 좋았다”며 은근히 약을 올린다.
시드니의 도심에 있는 스몰바.
시드니의 도심에 있는 스몰바.
구석진 도심 스몰바에서 칵테일 한 잔

오후엔 최근 시드니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몰바’ 투어에 나섰다. 스몰바는 차이나타운에서 서큘러키에 이르는 시드니의 중심 비즈니스구역인 CBD의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바를 말한다. 피시앤드칩스, 파이 같은 요깃거리와 로컬 맥주, 와인, 샹그릴라 같은 가벼운 주류를 판다. 오후 5시가 넘으면 근무를 마친 말끔한 직장인들이 한잔하러 스몰바를 찾는다.

2008년 30여개였던 스몰바는 현재 100여개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 서울 홍대 앞 거리에 있는 바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영업장마다 차별화된 콘셉트가 있는 점이 독특하다. 예컨대 ‘스티치 바’는 핫도그로 유명하고 ‘엉클 밍스’는 덤플링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코드로 실내를 꽉 채운 스몰바도 있고, 미싱으로 전면을 채운 곳도 있다.

다양한 스몰바를 한꺼번에 구경하는 방법도 있다. 스몰바 투어 업체에 75호주달러(약 7만5000원)를 내면 두 시간 동안 8개 정도의 바를 돌아볼 수 있다. 다만 투어 업체를 통하면 유명한 스몰바는 밖에서 구경만 하고 다소 한가한 바에서만 머무르니 참고할 필요가 있다. 6명이 함께 스몰바 투어에 나섰는데, 조그만 소품 하나하나에 주인의 손때가 묻어 있는 듯 빈티지한 바에 앉아 컨트리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와인 맛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서퍼의 천국 시드니…초보자도 한 시간이면 배워
오전 9시. 수영복을 챙겨 본다이 해변으로 출발했다. 서핑을 하기 위해서다. 호주는 서퍼의 천국이다. 동쪽으로 태평양, 서쪽으로 인도양, 남쪽으로 남대양에서 다양한 파도가 밀려와 초보자부터 고급자까지 수준에 맞게 서핑을 즐길 수 있다.

한국인 강사를 만나 주의사항을 듣고 본격적인 강습에 들어갔다. 보드 위에서 상체를 세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보드에 똑바로 엎드려 최대한 아래쪽을 잡고 가슴을 높이 들면 된다고 했다. 드디어 바다로 나갔다. 큰 입을 벌리면서 밀려오는 하얀 파도를 보고 재빠르게 해안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곤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파도에 몸을 맡겼다. ‘오, 이거 좀 재밌는데….’ 물에 빠지진 않을까 했던 걱정도 잠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게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했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법. 하나에 상체를 들어올리고, 둘에 오른쪽 다리로 중심을 잡고, 셋에 왼쪽 다리를 마저 세우고, 넷에 균형을 잡는다. 모래 위에선 너무도 쉬워 보였다. ‘서핑이 별거 아니군.’ 하지만 이런 자만심은 큰 착각이었다.

파도를 기다리다 재빨리 해안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나, 둘, 셋. 방금 배운 대로 순서에 맞게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보드와 혼연일체가 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실패였다. 두 번째는 가까스로 앉기에 성공했으나 바다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허공을 가로지르며 바닷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바닷물을 있는 대로 마셨다. 짜고 차가웠다. 하지만 묘한 매력이 다시 보드를 집어들게 만들었다.
시드니의 명소 하버브리지.
시드니의 명소 하버브리지.
하버브리지에 오르니 시드니가 한눈에
이튿날 하버브리지를 오르기 위해 출발했다. 1932년 만들어진 하버브리지는 시드니 도심에 있는 철제 아치교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길다고 한다. 길이 503m, 너비 49m에 최고 높이가 134m, 시드니항을 가로질러 철도, 차량, 보행자가 다니는 다리다.

이 거대한 철제 다리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생각을 도대체 누가 했을까. 주인공은 폴 케이브다. 그는 62개 정부기관과 보험회사를 9년간이나 설득해 정부로부터 임대계약을 따냈다.

하버브리지 등반 코스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300만명이 다녀갈 만큼 시드니의 명소가 됐다. 요금은 198~308호주달러(약 20만~30만원)로 만만치 않다. 보행자용 통로와 사다리를 통해 다리의 아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우주복 같은 복장에 무전기, 안전고리 벨트를 하고 10인 1조로 가이드를 따라 다리를 올라간다. 총 3시간30분 걸리는 일반 코스와 135분 만에 다녀올 수 있는 익스프레스 코스가 있다.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 1000여명이 단체로 다리에 올라 화제가 됐다고 한다.

드디어 꼭대기를 향해 출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까마득하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시드니항의 바다 빛이 오늘 따라 검게 느껴진다. 한 계단 한 계단 아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갈수록 바람이 더 거세진다. 다리에 달린 안전끈이 없다면 바로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40여분을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오렌지를 썰어 놓은 듯한 오페라하우스와 아름다운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한국은 어느 쪽인지 헤아려본다. 가슴이 탁 트인다. 그동안 쌓아뒀던 온갖 스트레스를 허공에 날려버리며 이렇게 외쳐본다. “나는 자유인이다.”

시드니=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여행팁

[Travel] 헬로 시드니! 여기가 천국이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시드니 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10시간 정도 걸린다. 시드니는 연중 340일이 맑아 1년 내내 쾌적하다. 남반구에 있기에 계절은 한국과 정반대다. 여름인 12~2월의 평균기온은 26도, 겨울(6~8월) 평균기온은 16도다. 시드니를 포함한 호주는 세계에서 건조한 대륙으로 손꼽힌다. 연평균 강우량이 600㎜ 미만이다.

표준시와 서머타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한국보다 한두 시간 빠르다. 화폐는 호주달러를 쓰며 현재 1호주달러가 999원 수준. 멀티어댑터를 챙겨야 한다. 전압은 220V지만 코드가 세 개짜리다. 항공사나 여행사를 통해 호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호주의 건강보조제, 보습크림, 각종 연고 등은 품질에 비해 싸다. 오메가3, 멀티비타민, 달맞이꽃오일 등을 국내보다 30% 이상 싸게 살 수 있다. 케미스트 간판이 붙은 약국이나 울월스 같은 대형할인점을 추천한다. 와인과 마누카꿀도 한국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