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SK그룹을 창업한 최종건 회장의 4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SK 100년의 기반을 다진’ 담연 최종건 창업회장의 창조적인 열정과 고귀한 도전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수많은 시련에도 위기를 넘어 기회로, 기회를 변화와 발전의 발판으로 삼아 더욱 강건한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사였다.

한국은 선진국들이 200년 이상 걸려서 이룬 경제성장을 60년도 채 안 돼 세계 10위권대의 중견국가로 우뚝 성장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우리의 경제발전사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신화창조의 주역들이 일궈낸 고난의 성장사다. 그 신화창조의 주역에 최 회장도 자리하고 있다. 기업을 성장시켜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산업구조를 고도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오늘의 SK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최 회장은 ‘하면 된다’ 는 불굴의 의지와 사업보국의 정신을 실천한 기업가다.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공장이지만 그는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꿈을 향한 뜨거운 가슴의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이었다. 그 뜨거운 열정은 불에 타다 남은 부품들을 조립해 네 대의 직기를 조립한다. 그 네 대의 직기는 오늘날의 SK신화를 만들어내는 씨앗이 됐다. 최 회장의 ‘하면 된다’는 불굴의 도전정신, 즉 기업가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 회장이 선경직물을 창업하고 사업을 확장한 시기는 우리나라가 산업경제로의 걸음마를 시작한 경제개발의 여명기다. 광복 후, 미처 건국기반을 다지기도 전에 닥친 6·25로 그나마의 산업기반이 초토화되고 전 국토가 황폐화됐다. 이런 사회·경제 환경에서 기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비단 개인의 성공 목표일 뿐만 아니라, 사업보국이라는 호국의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경영이념을 관통한 것은 이와 같은 사명감이었다. 그런 사명감으로 뚫지 못할 난관은 없다고 믿었고 그 불굴의 정신력이 또한 그의 삶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5대 그룹집단의 창업회장 중 최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 창업 기업가로 실용기술을 겸비한 실천적 행동가였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경쟁이 안 된다’라는 경영철학을 지녔던 그는 최고의 품질을 지향한 실천적 의지를 소유한 기업가였다. 그는 창업 이후 매일같이 자금 조달에 쫓기면서도 품질 혁신과 신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제품 제일주의’ 정신을 강조한 그의 의지이다.

최 회장은 사람을 아끼며 사람의 중요성을 아는 기업가였다.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의리를 중하게 생각하는 덕목과 사람을 중히 여기며 배려할 줄 아는 정신은 후일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하는 과정에서도 잘 나타난다. 인재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고, 이들이 적재적소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하는 용인술이 그것이다.

그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을 가진 기업가였다. 남보다 한발 앞선 새로운 서비스사업 진출과 수직적 통합 등 끊임없는 경영혁신의 전도사였다. 그는 국가 개발계획에 부응,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려 업계 최초로 수출을 하게 된다. 그의 불굴의 실천 정신과 통찰력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석유에서 섬유까지’, 산업을 수직계열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그것이다.

최 회장은 창업가형 기업가답게 생애를 불사르며 SK를 창업해 키웠고 굴지의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그의 개척자 정신과 무서운 추진력이 48년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업적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기업가정신과 경영이념은 동생인 고 최종현 2대회장으로 이어지면서 SK그룹 100년의 기반을 닦았고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김한원 < 경희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