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랜스지방
199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의 윌리엄 비크리는 수상 소식을 들은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인은 심장질환이었다. 이듬해에는 ‘살아 있는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가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소련 반체제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1989년),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1977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2009년)도 그랬다. 얼마 전엔 미국 조종사가 비행 중 쓰러져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심장질환은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사망 원인 1위로 꼽힌다. 주범은 트랜스지방이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2, 3, 5위인 뇌혈관, 심장질환, 당뇨병도 트랜스지방과 관련된 질병이다. 오랜 기간 몸에 축적되는데다 특별한 증세를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방치하기 쉽다. 그래서 ‘침묵의 암살자’로 불린다.

지방은 동물성 지방인 포화지방과 식물성 기름인 불포화지방으로 나뉘는데, 트랜스지방은 불포화지방에 수소가 합쳐진 것이다. 이를 많이 섭취하면 혈관이 굳거나 좁아져 심근경색, 협심증 같은 심혈관질환이나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 체내의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 지방단백질(LDL) 수치를 높이는 반면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비중 지방단백질(HDL) 수치를 낮추기 때문이다.

트랜스지방은 주로 빵이나 과자를 바삭바삭하게 만들기 위해 식물성 기름을 가공할 때 생긴다. 비스킷류 도넛 팝콘 케이크 라면 커피크림 등 다양한 가공식품의 원료로도 쓰인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위험성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식품의 수명(저장 기간)은 늘릴 수 있지만 인간의 수명은 줄인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저께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트랜스지방을 가공식품에 쓰지 못하도록 전면 금지할 계획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는 ‘식품 첨가제’로 분류해 허가 없이는 식품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라는데, 이를 통해 미국에서 연간 심장마비 환자 2만명, 심장질환 사망자 7000명 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은 식품 30g당 0.2g 미만을 ‘트랜스지방 제로’로 표기하기 때문에 미국의 0.5g 기준보다 더 까다롭다고 한다. 이를 준수한 대기업들은 미국 수출에 문제가 없다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중소업체들의 입지는 위태로워 보인다. 더구나 과자·빵류가 아닌 식품은 식약처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관련 데이터도 없다니 걱정이다. 트랜스지방이 유방암 발병 확률을 40% 이상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