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호동 포항철강공단 1단지에 입주해 있는 대형 플랜트 공장에서 한 직원이 매물로 내놓은 공장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포항=하인식 기자
포항시 호동 포항철강공단 1단지에 입주해 있는 대형 플랜트 공장에서 한 직원이 매물로 내놓은 공장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포항=하인식 기자
“죽을 맛입니다. 포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용광로 경기’가 꺼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4일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에서 만난 정상운 상인회 사무국장은 “외환위기 때도 끄떡없던 포항이 지금은 외지인들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며 한탄했다.

국내 최대 철강도시 포항이 ‘포스코발 불황’으로 활력을 잃어 가고 있다. 포항제철소 인근 상가는 열 집 건너 한두 집꼴로 점포 임대와 매매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 철강공단에 입주한 중소기업 27곳은 사실상 가동을 중단했다. 포항시도 세수 부족으로 기존 사업을 미루는 등 재정 운용에 빨간불이 켜졌다.

○포항철강공단도 꽁꽁 얼어붙어

포항 경기불황의 직접적 원인은 세계 경기 불황으로 포스코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최근 3분기 경영실적 설명회에서 연결기준 매출 15조1502억원으로 작년 3분기(15조7390억원)보다 3.7%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6328억원으로 작년 동기(1조202억원)보다 38.0%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 여파로 300여개 철강업체가 입주해 있는 포항철강공단이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상당수 철강사는 넘치는 재고를 감당할 수 없어 공장 내 빈터마다 제품을 쌓아둬 주차하기조차 힘들다. 한 공장 관계자는 “예전과 달리 야간작업을 하지 않는 공장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최병진 포항철강공단 관리담당은 “공단에 등록된 345곳 중 27개사가 이미 휴폐업을 했거나 부도처리, 경매진행 등의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한숨지었다.

○포항시 재정에 빨간불

포스코를 포함한 철강공단 기업들이 포항시에 내는 지방세가 급격히 줄면서 시 재정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2009년 포스코가 포항시에 낸 지방세는 전체 세입원의 32%인 98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는 연말까지 244억원으로 전체 세입원의 8.2%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 등 다른 철강공단 기업들이 내는 지방세도 같은 기간 430억원에서 286억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 때문에 재정자립도는 2009년 53.3%에서 올해 39.3%로 떨어졌다. 포항시 관계자는 “그동안 철강공단에서 납부한 지방세로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과 복지 등 긴박한 현안을 푸는 데 사용해왔다”며 “올해도 철강공단 지방세가 지난해에 비해 300억원가량 줄어 현안사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KTX 연결도로 건설 사업비 50억원을 확보하지 못해 내년 개통에 차질을 빚게 됐다. 내년 말 준공 예정이던 포항중앙도서관 건립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시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 편성에서 시장 공약사업은 물론 읍·면별, 부서별 신규 사업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서민체감 경기는 ‘공황 수준’

죽도시장의 한 식당 주인은 “요즘엔 제철소 직원들이 회식하는 걸 통 볼 수 없다”며 “매출이 작년보다 30% 이상 줄어 전기세도 내지 못할 형편”이라고 푸념했다. 포항제철소가 상권 활성화를 위해 포항시내 음식점에서 정례적으로 하기로 한 부서 회식도 요즘 들어선 거의 못하고 있다는 게 시장 상인들의 얘기다.

포스코가 신규 투자를 중단하면서 한때 3000여명에 달하던 건설플랜트 소속 노조원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찾아 울산 강원 등지로 떠났다. 노조 관계자는 “호경기 땐 플랜트 근로자들의 연간 총임금만 1000억원에 달했다”며 “지금은 공황 수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포항=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