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달 양적완화 유지를 결정한 이후 국제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더 커지는 양상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증시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한국에서도 외국인이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이다. 내년으로 늦춰졌다고 보지만 양적완화는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풀려나간 달러가 미국으로 환류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유로나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 없다면 더 강해진 미 달러화의 귀환에 대비해야 한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가 지난주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심포지엄에서 환율전쟁을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른바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신흥국들엔 환율방어가 다급한 과제가 될 것이며 세계경제가 더 어두운 시즌2로 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미 재무부가 최근 미 의회에 제출한 환율정책 보고서도 주목된다. 이 보고서는 원화가 2~8% 저평가돼 있다며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비판했다. 물론 이 보고서는 일본 엔화와 독일 경상수지 흑자 확대도 동시에 문제 삼았다.

미국이 막대한 돈을 풀면서 다른 나라의 통화관리를 비판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말하는 것이다. 브라질 인도 등은 이미 핫머니 공격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엊그제 브라질 중앙은행은 “시한없이 시장개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G20가 융통성 있는 환율 관리를 말한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세계시장은 결국 파워게임이다. 이는 우리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과정에서 목도한 그대로다.

양적완화 이후의 환율전쟁에 대비하라는 경고는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불길한 징조가 도처에 깔려 있다.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더 각별히 관리하는 등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은 섣불리 신흥국 입장을 대변할 여유가 없다. 그런 면에서 정부 고위관료들의 최근 발언은 너무 가볍게 들린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착각하면 큰일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