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에 다시 한 번 인생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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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 '바냐 아저씨'
안톤 체호프의 장막극 ‘바냐 아저씨’는 어찌 보면 잔인하다 싶을 만큼 냉혹하다. 주인공 바냐는 마지막 4막에서 이렇게 울부짖는다. “어떻게 좀 해줘! 아 젠장. 내 나이 마흔일곱이야. 예순까지 산다 해도 13년이나 남았어. 길어! 13년을 어떻게 살지? 뭘 하면서 그걸 채워? 남은 인생을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맑고 조용한 아침에 눈을 떠 내 인생이 다시 시작하는 걸, 지나간 모두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 걸 느낄 수 있다면.”
바냐의 친구인 의사 아스트로프는 짜증을 낸다. “새로운 삶이 다 뭐야! 자네나 나는 이제 희망이라곤 없어.” 바냐의 조카 소냐는 “참고 살아야 한다”고 아저씨를 다독인다. 별다른 희망 없이 그냥 살아내야 한다고 얘기한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성열 연출의 ‘바냐 아저씨’는 1895~1896년 러시아 시골 영지를 배경으로 쓴 원작을 가감 없이 그대로 무대에 옮긴다. 배우 중심의 정통 연극이다.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구성된 무대 세트부터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생의 공허함과 외로움, 쓸쓸함이 묻어난다. 흙과 건초더미, 포뮬러 나무로 보여주는 농촌 풍경에 가로놓인 낡은 마룻바닥에서 열망과 좌절 그리고 애증의 드라마가 2시간10분 동안 쉼 없이 펼쳐진다.
한명구(세례브라코프), 이상직(바냐), 박윤희(아스트로프), 정재은(옐레나), 이지하(소냐) 등 한국 연극계를 대표할 만한 배우들이 하나같이 실패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인생을 무대에 되살린다. 조용한 일상에 잠복돼 있던 열망과 불만들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괴로운 몸부림으로 표출되다 마침내 폭발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인생사를 물 흐르듯 보여주며 감동을 이끌어낸다.
다만 시종일관 예민하게 반응하며 지르는 듯한 톤과 광기에 찬 모습으로 바냐를 표현한 이상직의 연기는 간간이 다른 배우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극 중 27세인 옐레나는 젊은 나이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는 점을 감안해도 원숙미가 너무 풍긴다.
공연의 흐름을 깬 결정적 진원지는 객석이다. 갈등의 폭풍이 지나가고 정적이 흐르며 배우도 관객도 마음을 다잡아야 할 시간에 여기저기서 휴대폰 진동과 벨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모든 공연이 다 그렇지만 마이크 없이 육성을 사용하는 연극은 미세한 잡음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번 연극처럼 시적이고 문학성이 높은 무대는 더욱 그렇다. 한번 깨진 리듬은 수습하기 어렵다. 무대, 배우와 함께 연극을 이루는 3요소인 관객은 공연을 망치지 않도록 좀 더 주의해야 한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바냐의 친구인 의사 아스트로프는 짜증을 낸다. “새로운 삶이 다 뭐야! 자네나 나는 이제 희망이라곤 없어.” 바냐의 조카 소냐는 “참고 살아야 한다”고 아저씨를 다독인다. 별다른 희망 없이 그냥 살아내야 한다고 얘기한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성열 연출의 ‘바냐 아저씨’는 1895~1896년 러시아 시골 영지를 배경으로 쓴 원작을 가감 없이 그대로 무대에 옮긴다. 배우 중심의 정통 연극이다.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구성된 무대 세트부터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생의 공허함과 외로움, 쓸쓸함이 묻어난다. 흙과 건초더미, 포뮬러 나무로 보여주는 농촌 풍경에 가로놓인 낡은 마룻바닥에서 열망과 좌절 그리고 애증의 드라마가 2시간10분 동안 쉼 없이 펼쳐진다.
한명구(세례브라코프), 이상직(바냐), 박윤희(아스트로프), 정재은(옐레나), 이지하(소냐) 등 한국 연극계를 대표할 만한 배우들이 하나같이 실패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인생을 무대에 되살린다. 조용한 일상에 잠복돼 있던 열망과 불만들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괴로운 몸부림으로 표출되다 마침내 폭발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인생사를 물 흐르듯 보여주며 감동을 이끌어낸다.
다만 시종일관 예민하게 반응하며 지르는 듯한 톤과 광기에 찬 모습으로 바냐를 표현한 이상직의 연기는 간간이 다른 배우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극 중 27세인 옐레나는 젊은 나이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는 점을 감안해도 원숙미가 너무 풍긴다.
공연의 흐름을 깬 결정적 진원지는 객석이다. 갈등의 폭풍이 지나가고 정적이 흐르며 배우도 관객도 마음을 다잡아야 할 시간에 여기저기서 휴대폰 진동과 벨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모든 공연이 다 그렇지만 마이크 없이 육성을 사용하는 연극은 미세한 잡음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번 연극처럼 시적이고 문학성이 높은 무대는 더욱 그렇다. 한번 깨진 리듬은 수습하기 어렵다. 무대, 배우와 함께 연극을 이루는 3요소인 관객은 공연을 망치지 않도록 좀 더 주의해야 한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