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견제세력 없는 아베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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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제 넥타이에 쓰인 글씨가 보이십니까?”
지난 21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일본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시노하라 다카시 의원이 자신의 넥타이를 흔들어 보이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몰아붙였다. 넥타이에 깨알같이 박혀 있는 글씨는 ‘STOP! TPP’.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시노하라 의원은 다시 질문했다. “이 넥타이를 어디서 만든 건지 아십니까?” 아베 총리가 멍하니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야마구치현 농업협동조합(JA)입니다.” 야마구치현은 아베 총리의 선거구이고, 그곳의 주요 이익단체 중 하나가 JA다.
아베 총리의 아픈 구석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그러나 기세를 올리던 시노하라 의원은 의외의 발언으로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 “총리는 제발 민주당의 전철을 밟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유민주당 정권을 공격하려는 건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민주당을 타박하려는 건지 모호했다. 아베 총리는 질의를 끝낸 시노하라 의원에게 다가가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여유롭게 한마디했다. “좋은 넥타이네요.”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이번 임시국회엔 유난히 굵직한 쟁점이 많다. 소비세 증세부터 TPP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까지. 야당 입장에서는 공격할 ‘재료’가 풍성한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창끝은 의외로 무디다. 소비세든 TPP든 모두 전임 민주당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원전의 오염수가 줄줄 새는 것도 초기 대응에 실패한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자민당도 그런 민주당의 ‘원죄의식’을 안다. 그래서 더욱 기세등등하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도 여전히 60%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집단적 자위권 도입,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자민당의 거침없는 극우행보도 ‘견제세력 부재’라는 일본 정치현실에서 기인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 ‘자민당의 우(右)편향이 걱정’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유권자들이 무얼 기대하고 자민당을 찍었는지 기억하라”며 경제 문제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처럼 우려가 적지 않지만 대안이 없다. “누가 좀 말려줘요”라던 예전의 유행어를 떠올리게 하는 요즘의 일본 정치판이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지난 21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일본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시노하라 다카시 의원이 자신의 넥타이를 흔들어 보이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몰아붙였다. 넥타이에 깨알같이 박혀 있는 글씨는 ‘STOP! TPP’.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시노하라 의원은 다시 질문했다. “이 넥타이를 어디서 만든 건지 아십니까?” 아베 총리가 멍하니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야마구치현 농업협동조합(JA)입니다.” 야마구치현은 아베 총리의 선거구이고, 그곳의 주요 이익단체 중 하나가 JA다.
아베 총리의 아픈 구석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그러나 기세를 올리던 시노하라 의원은 의외의 발언으로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 “총리는 제발 민주당의 전철을 밟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유민주당 정권을 공격하려는 건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민주당을 타박하려는 건지 모호했다. 아베 총리는 질의를 끝낸 시노하라 의원에게 다가가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여유롭게 한마디했다. “좋은 넥타이네요.”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이번 임시국회엔 유난히 굵직한 쟁점이 많다. 소비세 증세부터 TPP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까지. 야당 입장에서는 공격할 ‘재료’가 풍성한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창끝은 의외로 무디다. 소비세든 TPP든 모두 전임 민주당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원전의 오염수가 줄줄 새는 것도 초기 대응에 실패한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자민당도 그런 민주당의 ‘원죄의식’을 안다. 그래서 더욱 기세등등하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도 여전히 60%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집단적 자위권 도입,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자민당의 거침없는 극우행보도 ‘견제세력 부재’라는 일본 정치현실에서 기인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 ‘자민당의 우(右)편향이 걱정’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유권자들이 무얼 기대하고 자민당을 찍었는지 기억하라”며 경제 문제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처럼 우려가 적지 않지만 대안이 없다. “누가 좀 말려줘요”라던 예전의 유행어를 떠올리게 하는 요즘의 일본 정치판이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